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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17. 2023

괜찮은 아빠이고 싶어서

정치평론가의 육아분투기

윤태곤

헤이북스

2023년 6월 14일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외국에서 한국방송을 듣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공중파방송이 인터넷으로 송출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귀국할 때까지 <정관용의 시자자키>와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거르지 않고 들었다. 서울을 오래 떠나 있었으면서도 시사와 경제 현안에 그리 어둡지 않았던 것이 두 방송 덕분이다.


<시사자키> 중에 <뉴스 사이다>라는 정치평론은 특히 놓치지 않았다. 평론을 맡았던 이는 늘 쉽고 직관적인 표현으로 현안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경제방송도 그랬다. 두 방송을 챙겨들었던 이유가 그것이었구나. 여태 모르고 있었다.


그 정치평론가가 페이스북에 보여서 친구가 되었다. 나보다 젊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내가 대학 입학하던 해에 태어날 정도로 차이가 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그의 평론은 원숙하고 깊이가 있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서는 정작 시사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고 롯데와 아이 이야기만 보였다. 그런 그가 책을 냈다고 했다. 뜬금없이 아이 키우는 이야기이다. 책의 주인공은 윤이진, 정치평론가 윤태곤의 딸이자 이제 여덟 살 된 아가씨이다.


저자는 마흔셋에 아이를 얻으면서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겠다고 마음먹는다. 매우 중요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잘못을 깨달았을 때 사과하는 일이다. 여느 청소년이 다르지 않겠지만, 자식이 고등학교 다닐 때 나와 사이가 몹시 나빴다. 내놓고 표시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다 대학 1학년 때 크게 충돌한 일이 있었다. 말대답도 크게 하지 않던 자식이 내게 대들었던 것이다. 그만큼 내 처사가 잘못된 것이었고.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그 자리에서 사과했다. 덕분에 몇 년간 싸늘하기 그지없던 부자관계가 극적으로 바뀌었다. 물론 내 힘은 아니었다. 그 난리 통 속에서 잠시 지혜 주시기를 기도한 덕분이었다. 아주 잠시, 한 일이 초 되었을까?


정치컨설턴트인 저자는 직장에 매인 몸이 아니니 아무래도 육아에 시간 내기가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비교적’ 수월하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아이와 함께 가는 가족 여행과 방송 일정이 겹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출연을 포기할 출연료의 상한은 얼마로 할 것인가? 일보다는 가정이라고는 하지만 일에서 성과를 보이고 내 몸값을 높여야 가정을 잘 꾸릴 수 있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볼 때 소득이 제일 높은 시기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이다. 그런데 나는 40대 중반에 들어가는 시점에 아빠가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 나는 수입이 줄어드는 시기에 접어들게 된다. 줄고 말고를 떠나서 언제까지 돈을 벌지 알 수가 없다. 마흔 셋에 아이를 낳았다. 직장에 얽매어 있지 않았던 우리 부부는 시간을 조정하기 쉬웠다. 아내는 일을 중단했고 나는 일을 조정했다.”


교회 청년부에서 몇 년을 보낸 일이 있다. 대학 마치고 결혼을 앞둔 청년들이었는데, 나이가 적지 않은데 도무지 결혼할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작심하고 잔소리를 했다.


“물려받을 재산이 많던지 결혼해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사람은 패스. 자식에게 돈이 가장 많이 필요한 때는 스물에서 서른까지이다. 서른에 아이를 낳으면 부모 나이로 쉰에서 예순 사이이다. 그 정도까지는 수입을 유지할 수 있으니 오케이. 마흔에 아이를 낳으면 예순에서 일흔 사이. 이미 퇴직해 벌어놓은 것을 까먹어야 할 때이다. 자식에게 가장 돈이 많이 필요할 때가 이미 모아놓은 돈을 아껴가며 쓰고 있을 때라는 말이다. 이미 서른을 넘긴 친구들, 잘 생각해라.”


저자는 마흔셋에 아이를 얻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칭찬 받을 만하다.

직장에 매인 몸이 아니라고 누구나 육아를 함께 하는 건 아니다. 그의 페이스북은 하나 건너 아이 사진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그가 육아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고 있었다.


저자는 책으로 공부하고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것과 실제 아빠가 되는 건 다르며, 주위에서도 어차피 준비해봐야 소용없다고 그러더라고 말한다. 그래도 당황을 극복하고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능력은 좋은 가르침과 준비를 통해서만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육아는 내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권한다. 육아는 돕는 게 아니라 참여할 일이라는 것이지. “실제로 젖 먹이는 일 말고 아빠가 못할 일은 없다.” 명언이다. 해본 사람만 할 수 있는.


지난 두 달 가까이 손녀들과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작은애는 큰애와 영 달라서 어지간히 구슬리기 전에는 곁에 오지 않는다. 제 엄마가 유튜브 보는 시간을 정해놨는데, 아이들이 어디 그것으로 만족하겠나. 그러다 보니 유튜브를 보고 싶을 때만 와서 아양을 떤다. 제 엄마가 안 된다니 잠시 갈등하지만 작은애는 결국은 원하는 걸 보고 만다. 그럴 때마다 그걸 통제하는 게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그걸 통제하는 게 어려운 것이 아이 때문이 아니라 부모 때문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쏟아놓는다.


“‘하루에 조금씩만, 화면이 작아 자극적이고 쉬 피로할 수 있는 스마트폰 말고 큰 TV로만’이라는 나름의 기준을 정했다. 그런데 그 기준이 이미 깨졌다. 그런데 그 다짐을 깬 건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아이가 즐겨 보는 ‘콩순이’는 부부에게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보채서 힘들 때, 부부 중 한 사람이 외출해서 나머지 한 사람이 혼자서 아이를 돌볼 때 기준이 깨진 것이다. 아이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콩순이’를 보여준 게 아니라 엄마 아빠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콩순이’를 호출하는 격이 됐다.”


앞서 말했듯이 저자는 페이스북에 아이 이야기를 자주 올린다. 부인은 보이지 않고 아이만 보여서 처음에는 혼자 사는가 싶을 정도였다. 저자는 아이도 아빠가 페이스북에 자기 이야기 많이 쓰는 걸 알고 있다고, 다행히 아직은 싫어하지 않고 좋은 반응은 즐기는데 언제까지 그럴지는 모르겠다고 말한다.


나는 페이스북 대문에 ‘혜인 혜원 할아버지’라는 문패를 걸어놓았다. 아이들 사진도 잘 올린다. 한 번은 큰애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놓으니 며느리가 독일 엄마들은 그걸 법에 어긋난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 얼른 내렸다. 며느리도 걱정스럽기는 다르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아이 사진만 받으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정신 못 차리고 올려대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생각이 났다. 요즘은 좀 덜 올리고, 꼭 올려야 하겠으면 뒷모습이나 잘 구분이 가지 않는 사진만 올린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저자의 부인은 아이 사진 올리는 걸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거리낀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저자는 부모는 내 아이가 커서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구체적인 바람을 써내려 간다. 오해는 마시라.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키우는 철학을 차근차근 짚어나간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두 아이에게 좋은 친구, 좋은 이웃, 좋은 어른을 만나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자랐으면 좋겠고, 훗날 건강한 시민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 좋은 이웃, 좋은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아이들 때문에 세상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 철학이라고 하기엔 너무 막연한가? 당연한 일이다. 아이 교육은 제 부모가 알아서 할 일이니 내게 그 아이들을 위한 교육 철학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저자는 아이를 가질까 말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선배로서 “키워보니 좋더라”고 말해주겠다는 말로 글을 끝맺는다. 그런데 정작 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준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나는 자식이라고는 아들 하나가 전부이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이 자식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판단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둘째를 갖기에 너무 늦었다. 자식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형제’였는데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 하나만 낳고 그만두겠다는 이들을 보면 밥 사 먹여 가며 그러면 안 된다고 말렸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 하나는 제대한지 벌써 오래 되었다.


저자를 알고 지낸 것은 오래 되었지만 얼굴을 본 것은 며칠 전 국회 포럼에서가 처음이다. 그는 나를 선배라고 부른다. 선배로서 한 마디. “이진이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형제라오.”


정치평론가인 저자는 책 말미에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를 던져 놨다.


“지지율은 자산, 저축 같은 거로 생각하면 돼요. 자산이 있어야 좋은 계획이 생겼을 때 투자를 할 수 있고, 불경기를 맞거나 불의의 사고가 닥치면 그 자산을 까먹으면서 버티다가 경기가 좋아지고 사고를 극복하면 다시 돈을 벌어 자산을 채우잖아요. 지지율도 똑같아요. 지지율이 높아야 당장 인기는 없어도 꼭 필요하고 나중에는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실행할 수 있어요. 지지율을 어느 정도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어야 정치적 실수나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가 발생해서 지지율이 낮아져도 버틸 수 있죠. 그러다가 여유가 생기면 다시 지지율을 높이고, 그 높인 지지율을 또 까먹고 그러는 거죠. 지지율이 낮으면 필요한 일도 못하고,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때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되죠.”


과연 그 다운 말이다.


저자의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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