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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27.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1)

노래 듣는 걸 무척 좋아한다. 노래를 듣기 위해선 오디오와 음반이 필요한데, 오디오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음반 모으는데 힘썼다. 이럭저럭 하다 보니 음반이 삼천 여장에 이르렀다. 사우디까지 끌고 갔다가 대충 정리하고 칠백 여장 정도만 골라놨는데, 잠시 서울에 다니러 온다고 왔다가 주저앉는 통에 아직도 그곳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지도 않게 하나 있는 아들이 성악을 공부해 지금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전속가수로 일하고 있다. 음반을 모으면서도 그것이 아들의 교재가 될 거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 아들이 내가 평생에 흠모했던 세계적인 대가들과 함께 공연하기도 하고, 그 중 몇몇은 직접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틈날 때 그 인연을 하나씩 정리할까 한다.


♣♣♣


라디오에선 늘 그렇고 그런 가요가 나왔다. 어느 날 검은 테 안경을 쓴, 여느 가수들과는 영판 다른 가수가 나타나 ‘딜라일라’라는 노래를 불렀다. 조영남이라는 그 가수는 서울대 성악과를 다닌다고 했다.


내 또래 중학생들 사이에서 그와 그가 부른 ‘딜라일라’는 신문명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얼마 지나고 나서 탐 존스가 부른 원곡을 들었다. 조영남이 부른 건 노래도 아니었다. 그때부터 팝송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되었다.


팝송을 틀어주는 방송이 당시에도 몇 개가 있었다. 최동욱이 진행하는 동아방송 ‘세 시의 다이얼’이 원조 격이었고, 피천득 선생 아들인 피세영이 진행하는 방송, 그리고 이종환이 진행하는 문화방송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뒤를 이었다. 그 중 ‘별이 빛나는 밤에’는 회원을 모집해 명동에 있는 아리랑백화점 2층에서 매주 방송에서 소개할 팝송의 가사를 나눠주었다. 매주 그곳에 가서 가사를 받아와 밤마다 하나씩 틀어주는 팝송을 익혔다.


그렇게 지내던 중에 그동안 심취했던 팝송과는 다소 결이 다른 노래를 듣게 되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무척이나 웅장한 반주에 맞춰 부른 노래였다. 그 이전에도 들었던 기억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야 비로소 그것이 ‘브랜다 리’가 부른 ‘If you love me’라는 노래인 줄 알았다.


그때 느꼈던 웅장했던 반주가 다름 아닌 바이올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그러고도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아마 우리 가요 음반에 현악기들이 동원되기 시작할 때쯤이 아닌가 싶다. 당시 청소년이 열광하던 노래는 그룹사운드였고 어른들이 즐겨듣는 가요는 기타에 드럼, 색소폰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 현악기 여러 대가 내는 소리가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에디뜨 피아프가 부른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라는 샹송의 번안곡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또 몇 년이 필요했다. 사실 거기에 동원된 현악기라야 고작 바이올린과 첼로 몇 대가 전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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