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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y 29. 2023

5월 오페라축제 폐막작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비스바덴 극장에서는 5월에 오페라축제를 엽니다. 출연자 면면을 보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한해 큰 농사인 셈이지요. 그래서 극장 소속 가수보다는 비싼 돈을 들여 유명 가수를 초청해 공연합니다. 이맘때면 다음 시즌 공연계획이 발표되는데요, 5월 오페라축제 기간에 공연하는 오페라는 평소와 출연자가 다릅니다. 그러니 5월 오페라축제에 배역을 맡았다면 나름 극장에서 간판으로 내세운다고 봐야지요.


이번 축제 때 개막작은 베르디 <나부코>였고 폐막작은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였습니다. <나부코>에는 세계 최정상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오늘 공연한 <트리스탄과 이졸데>에는 세계 최정상의 바그너 전문 테너 안드레아스 샤거가 출연했습니다. 이름만큼이나 비싼 가수들이지요. 혜인 아범은 <나부코>에서는 제사장 자카리아 역을,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는 콘월 국왕 마르케 역으로 출연했습니다. 모두 당당한 주역으로, 그것도 극장 간판 성악가로 세계 정상의 성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선 것입니다. 아비로서 여간 뿌듯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 오페라 애호가들은 아무래도 이탈리아 오페라에 익숙하지요. 제가 처음 오페라를 본 게 중학교 2학년 때이니 1968년이었군요. 당시 시민회관에서 김자경 오페라단이 공연한 베르디 <아이다>였습니다. 신일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쳐주시던 윤치호 선생님께서 아이다의 아버지인 아모르나스 역으로 출연하셔서 가게 된 것이지요. 이탈리아 오페라라면 베르디와 푸치니와 로시니를 꼽을 수 있고,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지만 대부분 이탈리아어로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이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초기 작품인 <탄호이저>까지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형태가 다르다는 느낌 정도이지만, <트리스탄과 이졸데> <반지 시리즈>는 과연 이것을 오페라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차이를 보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오페라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혜인 아범에게 물어보니 이탈리아에서도 바그너 오페라가 꽤 공연 된다는군요.


오늘 비스바덴 극장 무대에 오른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연주시간만 네 시간, 휴식시간 두 번까지 합하면 무려 다섯 시간이나 걸립니다. 네 시간 걸리는 <탄호이저>도 힘들었는데 다섯 시간이라고 해서 각오를 단단히 했습니다만, 다섯 시간은 너무 깁니다. 관객이 힘들 정도이니 연주자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더워진 날씨에 두꺼운 무대의상을 입고 조명이 쏟아지는 곳에서 몇 시간을 서있어야 하니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지요. 비스바덴 극장 오케스트라에 한국 연주자가 몇 분 계신데, 고생스럽기는 그분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죽는 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서는 그들이 죽을 때쯤이면 단원들도 거의 죽음 문턱까지 이른다고 농담한다네요.


연주시간이 긴 것이야 내용이 재미있고 선율이 귀에 익으면 별게 아니지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과장해서 말하면 노래 세 곡으로 이루어진 오페라입니다. 1막에 한 시간 반짜리 한 곡, 2막에 한 시간 반짜리 한 곡, 3막에 한 시간짜리 한곡, 이렇게 말입니다. 노래가 당최 끊어지지가 않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그런 불평을 할 만한 거지요. 게다가 선율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작곡을 공부한 혜인 어멈이 화성이 완성이 되지 않은 채 계속 진행된다고, 그래서 화성을 무너뜨린 작곡가라고 평가한다는 설명을 해줬는데, 들어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선율이랄 것도 없고 반복되는 멜로디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눈대목 없는 판소리와 같다고 해야 할까요. 판소리는 소리꾼이 사설을 늘어놓는 아니리, 부채와 몸짓으로 흥을 돋우는 발림, 그리고 절창에 해당하는 눈대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눈대목은 오페라로 말하자면 아리아쯤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설과 발림만 있는 판소리를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어지간한 끈기 없으면 아마 못 들을 겁니다.


바그너 오페라는 아리아가 없습니다. 그래도 <탄호이저> 같은 것은 아리아 비슷한 정도는 있지요 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노래라기보다는 고저와 장단이 있는 대사라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음악극이나 뮤지컬을 본 게 아니라 고저장단을 강조한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휴식 시간 포함해서 다섯 시간. 지루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막이 내리고 나니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저도 당연히 일어나 박수를 쳤습니다. 엉덩이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 도저히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었거든요.


아마 한국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를 감당할 만한 연주자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 같이 성격 급한 사람들은 절대 못 참을 만큼 길고 게다가 내용이 우리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거든요. 이 작품의 줄거리는 링크로 걸어놓겠습니다. 그런데 그거 봐도 막상 오페라를 보면 하나도 도움이 되지가 않을 겁니다. 제가 썼고, 오늘 극장가기 전에도 읽고, 심지어 휴식시간에 읽었는데도 무슨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독일 사람들도 자막이 있으니 알아듣지 노래만 들어서는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https://brunch.co.kr/@ispark195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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