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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y 20. 2023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공연한 <탄호이저>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는 독일 중부지방인 튀링겐 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음유시인이면서 기사인 탄호이저는 튀링겐 영주 헤르만의 조카딸인 엘리자베트와 순수한 사랑을 나누지만 곧 그에 싫증을 느낀다. 그러던 중 관능적인 사랑의 여신 베누스의 유혹을 받고 쾌락의 세계에 빠져든다. 쾌락마저 권태를 느낀 그는 다시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돌아온다. 성에서는 영주 헤르만이 ‘사랑의 본질’을 주제로 하는 노래경연대회를 열고 있었고 많은 음유시인들이 나와서 순수한 사랑을 예찬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어 등장한 탄호이저는 사랑의 본질은 쾌락이라며 쾌락의 여신 베누스를 찬미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에 많은 참가자들이 신성한 전당에서 쾌락의 세계를 찬미하는 것을 보고 분노해 그를 공격하자 엘리자베트가 탄호이저에게 참회의 기회를 주자며 그들을 설득한다. 그러자 영주 헤르만은 탄호이저에게 속죄하라며 로마 순례를 명한다. 시간이 흘러 로마 순례를 마친 사람들이 <순례자의 합창>을 노래하며 돌아오는데 순례자의 행렬 속에 탄호이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엘리자베트는 절망한다.”


줄거리에 나타난 대로 이 작품은 ‘튀링겐 주’에 있는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이 성이 단지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의 배경일 뿐 아니라 작품의 주인공인 엘리자베트는 튀링겐 영주의 부인이었고 음유시인들의 노래경연대회도 실제로 열렸다는군요. 작곡자인 바그너가 이 성에 머물면서 이런 이야기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지요. 혜인 아범은 이 작품에서 ‘튀링겐 영주’역을 맡아 출연해왔습니다.


‘바르트부르크’ 성은 튀링겐 주의 도시인 아이제나흐에 있습니다. 해발 400미터가 넘는 꽤 높은 산꼭대기에 있어 민가에서도 상당이 떨어져 있다는 군요. 이 성이 1067년에 건축되었다니 천 년이나 된 유물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이 되었습니다.



이 성은 또한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가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해 목숨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작센의 선제후였던 프리드리히가 루터를 숨겨 보호했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루터가 라틴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곳이 바로 이곳이지요. 이 성에는 지금도 루터의 방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어제인 5월 19일에 바로 이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열린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 공연에 혜인 아범이 출연했습니다. 늘 해오던 튀링겐 영주 역을 맡아 노래했습니다. 이 성에서는 해마다 5월에 음악축제가 열리는데, 그 중 오페라는 인근 마이닝겐 오페라극장이 맡고 있습니다. 혜인 아범은 마이닝겐 오페라극장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장소는 자기네 극장이 아닌 바르트부르크 성이었던 것이지요.



오페라라고 하면 대체로 이탈리아를 먼저 떠올립니다.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인 베르디와 푸치니가 이탈리아 사람일 뿐 아니라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지만 작품 대부분을 이탈리아어로 작곡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바그너를 가장 먼저 꼽습니다. 성악가 중에서도 바그너 전문 가수가 더 높은 대우를 받는답니다. 혜인 아범도 바그너 오페라에 많이 출연했습니다. 어제 출연한 <탄호이저> 외에도 바그너의 대표작인 반지 시리즈 중에서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그프리트>에 출연했고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도 출연했습니다. 바그너 작품 대부분에 출연했으니 바그너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겠지요. 그래서인지 어제 연주하는데 느낌이 정말 다르더랍니다. 천 년이나 되는 성에서, 그것도 작곡가가 머물면서 작품을 구상하고, 그렇게 작곡한 그 작품을 바로 구상한 그 장소에서 연주했으니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작곡자의 숨결을 느끼며 연주하는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어쩌면 작곡자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주장은 좁고 길게 되어 있어서 무대가 크지 않고 그래서 작품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는 어려웠지만, 마치 신라 천년 고도 경주 어느 한옥에서 판소리 공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하네요. 연주장이 좁다 보니 출연자가 객석 통로로 들어오기도 하고 합창단은 통로에도 서고 객석 뒤편에도 서서 노래 부르기도 했답니다. 앞줄에 앉은 사람은 아주 실감났겠다고 하니 혜인 아범은 오히려 조금 뒤쪽이 낫지 않았을까 그러네요. 무대 단이라고 해봐야 객석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이고 연주자 바로 뒤편 같은 높이에 오케스트라가 있으니 울림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하긴 전문적인 연주장이 아닌 한계겠지요.


혜인 아범은 그곳이 바그너가 작품을 구상한 곳이자 작품의 무대가 되는 곳이어서 감회가 깊다고 했는데, 저는 다른 이유로 느낌이 남달랐습니다. 바로 루터가 위협을 피해 숨어 지내면서 라틴어 성경을 번역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가 출석하는 교회가 바로 루터교회이고 저희 목사님이 독일에서 루터신학을 공부하신 우리나라 최고의 루터 전문가이시니 말입니다. 어쩌면 바르트부르크 성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을 텐데, 혜인 아범이 돌아와서 이야기해줄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마침 혜인 아범이 기념이라고 아이제나흐 이름과 바르트부르크 성이 찍힌 에코백을 하나 사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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