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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29.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2)

중학교 3년 동안 바리톤 윤치호 선생에게서 음악을 배웠다. 그때는 성악가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한 형편이었으니 음악선생께서 당시 잘 나가던 성악가였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윤 선생께서는 피아노를 잘 치지 못했다. 학생 대부분은 피아노도 제대로 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음악을 가르치는지 의아해 했다. 한 마디로 시원치 않은 선생 정도로 알았다는 말이다.


어느 날 학교 행사에 음악선생께서 노래를 부르러 단상에 올라갔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독일 가곡 정도 부른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때 그런 노래를 듣는 건 고사하고 그런 노래가 있다는 걸 아는 학생들도 없었다. 다른 선생님들이라고 달랐을 것 같지도 않고.


윤치호 선생 덕분에 당시로서는 매우 진귀한 경험을 했다. 시민회관에서 김자경 오페라단이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공연하는 걸 보러 간 것이다. 선생께서 바리톤이셨으니 이집트 왕이나 제사장 역으로 출연하셨을 것이다. 요즘은 조금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오페라 관객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박수부대로 동원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행히 돈을 낸 기억은 없다. 그걸 보면 오페라를 모르는 제자들에게 성의를 베푼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민회관은 당시 60년대 후반 서울에서 최고로 쳐주는 공연장이었다. 1972년 화재로 소실된 후 1978년 그 자리에 세종문화회관이 들어섰다.


오페라는 지금도 중학생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공연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오페라는 작곡가의 언어인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공연이 이루어진다. 베를린에 있는 코미셰 오페라극장은 모든 오페라를 독일어로 공연하기도 하고, 최근 우리 음악계에서도 오페라의 레치타티보(대사를 노래로 부르는 것)를 우리말로 바꾸어 공연하는 경우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원어 그대로 부른다. 지금이야 자막이라도 있다지만 오십 년도 훨씬 넘은 그 옛날에 중학생이 어떻게 오페라를 이해할 수 있었겠나. 그러니 그저 그런가 보다 했지.


그렇기는 해도 그때 오페라를 본 것이 무척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작품의 배경이 이집트 문명시대가 되다 보니 무대장치에 공이 많이 들어가고 게다가 복장이나 소품을 재현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을 텐데, 당시 수준에 그걸 얼마나 소화해 낼 수 있었을까. 어찌 되었건 지금껏 오페라를 보면서 그때만큼 강렬한 느낌을 받는 경우는 없었다. 특히 개선 장면은 지금도 기억이 날만큼 화려했다. 금빛 찬란한 무대와 의상.


앞줄에 앉은 여학생들에게 장난 거느라 두근두근 했던 기억도 새롭다. 양 갈래 머리였으니 공립학교 학생은 아니었을 것이고.


생각해보니 윤치호 선생께 큰 빚을 졌다. 하나 있는 자식이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게 된 시초가 그 경험이었을 테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자식이 독일에 유학 간 바로 다음 해에 돌아가셔서 자식이 오페라 가수가 된 것을 말씀드릴 기회가 없었다. 아셨으면 무척 기뻐하셨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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