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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01.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3)

교회 다니면 노래를 부를 일이 많다. 예배 때 찬송가 서너 곡을 부르고 매 찬송가 마다 4절이 기본이니 예배 한 번 드리면 노래 열댓 곡은 부르는 셈이다. 중학생 때부터 성가대를 했다. 큰 교회는 모르겠지만 작은 교회는 성가대석 자리 채우기 바쁘니 성가대원이 되는 것과 노래 잘 부르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래도 성가대원으로 계속 지내다보면 노래가 늘기는 한다.


교회 예배와 음악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래서 교회에는 음악 하는 사람들이 어디나 넘친다. 성악은 물론 피아노와 악기 연주하는 이들도 많다. 사실 음악을 하는데 특별한 결심이 필요한 건 아니다. 교회 다니는 동안 그냥 음악이 몸에 배었으니 말이다. 교회에 찬양이라는 것이 들어오고 나서 밴드가 등장했지만 우리 중고교 때도 기타를 치기는 했다. 다니던 교회가 아주 보수적인 교단이어서 예배 시간에 기타 치다가 사탄이라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다. 요즘은 본당에 드럼을 놔두는 교회가 허다하지만, 드럼이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십 년 넘게 시끄럽기도 했다.


내가 다닌 신일학교는 기독교학교로 매주 예배를 드리고 부활절과 감사절도 큰 명절로 지냈다. 학교 다니는 내내 합창이 되었든 중창이 되었든 여기저기서 모여 노래 부르는 게 일상이었다. 게다가 중학교 때는 바리톤 윤치호 선생께, 고등학교 때는 작곡가 한태근 선생께 배웠다. (한태근 선생께서는 ‘꼬부랑 할머니’ 작곡자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성경 전체를 노래로 작곡하신 대단한 분이시다.)


우리 때 이미 고등학교 전 과정이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래서 2학년부터 시험과목이 아닌 음악, 미술, 체육 수업은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2학년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교부에서 수업 정상화 지침을 발표하고 학교에서는 부랴부랴 그 과목 시간을 다 부활시켰다. 그렇기는 해도 입시와 관계가 없으니 수업시간이 느슨해질 수밖에. 그래서 한태근 선생께서 외국 가곡을 가르쳐주셨다. 덕분에 ‘라스파뇨라’, ‘오 솔레미오’, ‘산타루치아’ 같은 외국 가곡을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원어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뜻은 모른다.


고등학교 들어와서도 ‘별이 빛나는 밤에’ 회원을 이어갔다. 라디오를 조그맣게 틀어놓고 공부하다가 야단도 많이 맞았다. 노래 들으면서 무슨 공부가 되겠느냐고. 그래서 나는 자식에게 노래 들으며 공부한다고 야단 친 일이 없다. 하긴, 자식을 제대로 보고 살았어야 야단이라도 치지. 출장으로 집 비우는 날이 더 많았으니 말이다.


신일학교 정문 옆 건물 지하에 DJ가 있는 다방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노안이었던 데다가 머리를 빡빡 깎지 않는 학교에 다녀서 말을 않고 가만있으면 다들 휴가군인인가 했다. 그래서 대학입시 준비하면서도 한 주일에도 몇 번씩 이곳에 가서 노래를 들었다. 그때 멜라니 사프카에게 매우 심취해 있었다. 하도 신청해대니 내가 보이면 DJ가 알아서 그 가수의 노래를 틀어주곤 했다. Ruby Tuesday, What have they done to my song ma, The Sadist Thing 같은 노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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