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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02.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4)

고등학교 친구 하나가 피아노를 아주 잘 쳤다. 친구는 그때 이미 팝 피아노를 쳤다.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도시락 다 까먹고 점심시간만 되면 그 친구를 끌고 음악실에 올라가 이것저것 쳐보라고 닦달을 했다. 그 친구는 한 번 들으면 무슨 노래든 피아노로 칠 수 있었다.     


한 번은 둘이서 허리우드 극장에 갔다. ‘섬머타임 킬러’라는 영화였는데, 당시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연으로 인기절정에 있었던 올리비아 핫세와 로버트 미첨의 아들 크리스 미첨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도망갈 때 배경으로 깔리던 노래가 얼마나 애절한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친구는 한 번 들으면 그걸 그대로 연주할 수는 있지만 그걸 오래 기억하지는 못했다. 친구도 그 노래에 꽂혔던지 영화를 보다가 날더러 얼른 멜로디를 외우라고 했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나는 그렇게 외운 노래를 부르고 그가 곧바로 받아서 피아노를 쳤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명동 ‘르씨랑스’라는 곳에 자주 갔다. (그것이 나중에 자리를 옮겨 그 유명한 ‘쉘부르’가 되었다. - 바로 잡습니다. 두 곳이 아무 관계가 없다는 친구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르씨랑스는 이백천 씨가 쉘부르는 이종환 씨가 운영했답니다.) 양병집 같은 통기타 가수들이 노래 부르는 곳이었는데, 그 친구를 부추겨 그곳에서 피아노를 치게 하기도 했다. 당연히 관심을 끌었지만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핀잔만 들었던 것 같다.   

  

대학입시 준비 막바지에 광화문 독서실에서 두어 달 보낸 일이 있었다. 그때 ‘쉘부르’가 명동을 거쳐 종각 앞 네거리 모퉁이에 문을 열었다. (선후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몰입해서 입시준비 하겠다고 독서실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하루걸러 ‘쉘부르’를 드나들었다. 부모님이 아셨으면 기함을 하셨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시험에 떨어지지는 않아 모든 비리가 다 묻혔다.     


대학 들어가서도 ‘쉘부르’에 꾸준히 다녔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던 이종환 씨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포크 가수의 산실 같은 곳이었다. 허참이 그곳에서 사회를 보고, 김세화 권태수가 그곳에서 노래 부르다 발탁되었다. 그곳에서 노래 부르던 가수 중에 ‘양동이’라는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그대 고운 두 눈은 맑은 호수’로 시작하는 이문세가 부르는 ‘그대’라는 노래를 그가 작사 작곡 했는데, 바로 쉘부르에서 그 노래를 불렀다. 그 이후로 그가 노래하는 걸 본 일이 없다. ‘그대’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너무 아쉬웠고. 그래서 이문세가 다시 그 노래를 불렀을 때 무척 반가웠다.     


대학교 갓 입학 했을 때쯤에 명동 성당 앞에 있던 YWCA 회관에 ‘청개구리’라는 노래하는 이들이 있었다. 어느 날 그곳에서 고등학교 내내 쫓아다녔던 여학생과 아주 닮은 여대생이 나와 ‘Er Estu’를 불렀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꾸준히 듣는 노래가 되었다. 웃기지 않은가? 쫓아다녔던 여학생이 부른 것도 아니고, 그와 닮은 다른 이가 부른 노래인데. 아무튼 그 노래 때문에 한동안 그 노래를 부른 Mocedades라는 그룹의 노래에 심취했었다.     


피아노를 그렇게 잘 쳤던 친구는 음대에 진학하지는 못했고, 망우리 어디선가 피아노 학원을 하다가 마흔도 되기 전에 별이 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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