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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05.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5)

나는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그렇게 부럽다. 평생 성가대원을 했으니 아주 못 부르는 편이 아니기는 하다. 자식이 성악가로 사는 걸 보고 내가 노래를 잘 부를 것이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아니거든. 어렸을 때 집에서 노래 부르다가 어머니께 수도 없이 혼났다.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것인지, 노래를 부르려면 제대로 부르라는 것인지. 야단 끝에 항상 아버지는 노래를 잘하는데 아들은 왜 저 모양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부자가 모두 술을 좋아하니 술 마시러 갈 때마다 아버지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 같은 술집에 갔던 일도 적지 않다. 내가 미처 피하지 못하면 아버지가 알아서 피해주셨다. 그러다가 간혹 아버지가 노래 부르시는 걸 듣기도 했다. 그렇기는 해도 피하기 바빠서 제대로 들어본 일은 없다.


고모님 칠순 때 아버지가 노래 부르시는 걸 처음 들었다. 아, 상상 이상이었다. 어머니가 내가 노래 부를 때마다 듣기 싫다고 야단칠 만한 솜씨이셨다. 고모님들도 동생이 노래 잘한다고 늘 자랑하시더니, 그럴 만하셨다. 유전자가 한 대 걸러 발현된다는데 우리 집 경우를 보면 과연 그렇다. 자식이 성악가로 자란 건 오로지 제 할아버지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여학생 하나를 쫓아다녔다. 키가 훤칠하게 큰 것도 아니었고 미인과는 거리가 있는 친구였다. 다만 삼단 같이 풍성한 머리칼이 허리까지 내려올 만큼 길었고, 노래를 아주 잘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머리 길고 노래 잘하는 여성을 보면 마음이 설렌다.) 당시 성악을 공부하고 있다는 건 알았어도 노래를 들어보지는 못했다. 이민 가는 친구 송별자리에서 처음 그 여학생 노래를 듣고 그때부터 공부도 제쳐놓고 그 여학생에게 두 해 동안 목숨을 걸었다. YWCA 회관에서 ‘Er Estu’를 부른 여대생이 닮았다는 그 여학생이다. 그 여학생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두 해 뒤에 결혼을 하면서 성악 공부를 그만 두어야 했다.


마흔이 조금 넘었을 때인가, 교회에 낯익은 얼굴이 하나 보였다. 한참 지나고 나서 그 여학생의 친구였다는 게 생각났다. 마침 아내와 가깝게 지내는 교인과 아주 친하다고 해서 집으로 초대했다. 아내의 심술이 조금은 작용했을 것이다. 아내와 아내의 친구와 그 여학생의 친구 셋이서 나를 놀려먹느라 신이 났더랬다.


그 여학생은 목사님과 결혼해 잘 살고는 있는데, 워낙 조심스러운 자리라서 외향적인 성격과는 다르게 모든 것을 누르고 살아야 했단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마흔이 다 된 나이에 다시 성악을 시작해 그때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무척 궁금했다.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졸업연주회에 가볼 생각을 잠깐 했다. 졸업연주회 날짜야 친구에게 물어보면 되는 일이었고. 결국은 생각만 하고 말았다.


어쩌면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과 인연을 이어간 데에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와 그 여학생의 기억이 바탕에 깔려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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