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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06.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6)

중학교 때 가족이 파주로 내려간 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교 근처에서 혼자 살았다. 하숙도 해보고, 자취도 해보고. 그러다가 대학 들어간 후 통근열차로 파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때쯤 그룹사운드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공연이 부지기수로 열렸다. 그룹사운드 경연대회도 한 해에 몇 번씩 열렸다.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돋아난 그룹사운드 중에 극소수만 살아남았고 대부분은 데뷔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요즘과 달리 홍보도 쉽지 않은 세상이었는데도 그런 공연은 귀신 같이 알고 찾아다녔다. 그래도 다행히 그룹사운드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통근열차에서 미군 사병 하나가 곤경을 겪고 있는 걸 도와준 인연으로 그와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 때문에 파주에 있는 미군 전용 클럽을 무시로 드나들었다. 당시만 해도 미군부대 경기가 좋을 때여서 쟁쟁한 그룹사운드가 출연했다. 나중에 정훈희와 결혼한 김태화가 클럽에 붙박이로 출연하는 ‘라스트 찬스’의 멤버였고, 간혹 ‘와일드 캐츠’가 출연했다. 다른 그룹사운드가 기타와 드럼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와일드 캐츠’는 트럼펫 트럼본 같은 브라스까지 있어서 비교가 불가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이 ‘와일드 캐츠’가 그로부터 몇 년 후 인기가요 차트 상위권을 수 년 동안이나 휩쓴 ‘들고양이들’이었다. 가요계에서는 인기를 끌었지만 내 느낌으로는 클럽에서 연주하던 때 보여줬던 아우라 몇 분의 일도 보여주지 못했다.


학교에는 빠지지 않고 갔다. 강의는 형편이 되면 들어가고. (그래서 결국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했다.) 안암동 로터리 ‘서브웨이’ 다방에 음반이 무척 많았다. 그때만 해도 DJ가 없는 다방은 학생들이 가지를 않았다. 나보다 두어 살 위인 DJ와 친해져서 틀어주는 노래 절반은 내가 신청한 곡이었다. 나하고 별로 나이 차이도 나지 않는데 팝송에 어찌나 해박했는지 내가 묻는 것에 망설임조차 없이 대답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팝송에 얽힌 사연을 설명하며 물 흐르듯 진행을 이어나갔다.


그와 가까워지면서 내 자리는 다방 구석에서 아예 DJ 박스로 바뀌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DJ의 보조가 된 것이다. 신청곡 들어오면 음반을 찾아 그에게 건네는 것까지가 내 몫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자리를 비울 때면 내가 음반을 틀기에 이르렀다. 시간 날 때 다방에 가서 노래를 듣던 것이 시간 날 때 강의에 들어가는 꼴이 되었다. 나중에는 멘트도 했다.


“아무개 손님, 카운터에 전화 와 있습니다.”


그때는 다방으로 전화해서 손님을 바꿔달라고 했다.


과장 시절인가, 발주처 감독들 하고 가라오케에 갔을 때 일이다. 감독 중 하나가 팝송 깨나 안다고 설쳐대서 시비가 붙었다. 그래서 상대가 지정하는 노래를 부르는 시합이 붙었다. 승부는 일찌감치 결정이 났다. 상대 감독이 진 게 억울해서 내가 모르는 게 나올 때까지 계속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결국 그 감독이 내가 모르는 노래를 찾아내지 못해 손을 들었다. 그랬어도 술값은 우리가 냈다. ‘갑’을 물리친 죄 값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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