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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09.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7)

노래를 들으려면 오디오부터 사야했는데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오디오는 꿈도 꾸기 어려운 형편이었던지라 그저 다방에서 노래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당시 파주에서는 전화흫 걸려면 교환원을 통해야 했다. 다이얼 없는 전화기를 들고 옆에 있는 손잡이를 돌리면 교환원이 나오고, 그 교환원에게 전화번호를 대고 연결해달라고 해서 전화를 걸었다. 교환원들은 대체로 누나들이었다. 그래서 밤이 깊어지면 전화 걸다가 친해진 교환원들에게 부탁해 다방에서 자는 DJ에게 노래를 틀어달라고 해서 듣기도 했다. 수화기를 통해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이다.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오디오 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걸 보고 누군가 오디오를 사고 싶으면 먼저 음반을 사라고 했다. 음반이 생기면 오디오는 따라 오는 법이라면서. 오디오는 고사하고 집에 전축 비슷한 것도 없는 처지였으니 언감생심 꿈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슬며시 욕심이 생겼다.


당시 꿈이라도 꾸어볼 수 있는 정도 값의 오디오로는 훗날 에로이카 전축으로 옷을 갈아입은 별표 전축이 있었고, 동원전자에서 나오는 인켈 컴포넌트시스템이 첨단 음향기기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때 형편으로는 별표 전축도 감지덕지였는데도 지금까지 있었던 구닥다리 모습을 벗어버리고 은백색 금속 외관을 화려하게 뽐내는 인켈에 그만 마음을 뺏겨버렸다. 그렇다고 별표 전축과 인켈의 음질을 비교해본 것도 아니다. 그저 번드르르한 외관만 보고 꽂힌 것이지. 대학 입학금이 이십만 원을 넘었다고 소란스러웠던 당시 인켈 오디오 가격은 백만 원에 가까웠다. 넘볼 일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누군가 이야기처럼 먼저 음반을 사기로 했다. 당시 복학을 하기 전이어서 퇴계로에 있는 DP&E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전에는 카메라로 찍은 필름을 이런 가게에 맡겨 사진을 뽑았다. 암호 같은 영문 알파벳은 현상, 인화, 확대를 뜻한다.) 한 주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음반 한 장을 겨우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음반이 한 장 두 장 쌓여가니 오디오가 눈앞에서 계속 맴돌았다. 이미 복학했을 때이고 휴학하기 전에 워낙 개떡같이 살았던 터라 학업에서 더 이상 눈을 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마침 군속으로 계시던 가까운 형님이 PX에서 반값으로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정도라면 학교 다니면서도 어떻게 마련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까지 기회가 생기면 하는 정도였던 아르바이트를 눈에 불을 켜고 찾기 시작했다. 일 년 시한을 잡고 한 달에 사만 원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얻은 자리가 북아현동 중고생 학원 선생이었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형편이 아니니 과목은 정해주는 대로 하겠다고 했다. 내가 원장이었으면 그런 선생을 뽑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 있는 과목 하나 제대로 없는 선생이었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수학 수업을 맡았고, 적금을 들었고, 돈이 거의 모여 갈 때쯤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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