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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11.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8)

군속이라고 PX 물품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더구나 컴포넌트 오디오는 사치품이어서 몇 년에 한 번 살 수 있단다. 그런데 그 형님이 같은 사치품으로 분류된 다른 물품을 사는 바람에 몇 년 동안 오디오를 살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물론 본인은 그런 사실을 몰랐던 것이고. 결국 적금 만기가 되어 당초 마음먹었던 컴포넌트 오디오가 아닌 일체형 오디오를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턴테이블은 당초 생각했던 것을 살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턴테이블은 모두 벨트 드라이브였다. 모터와 휠을 벨트로 연결해서 구동하는 방식이었는데, 아주 고급이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벨트가 늘어나 회전수가 자꾸 늦어졌다. 노래는 잘하지 못하면서도 쓸데없이 귀만 밝아서 속도가 아주 미세하게 늦어져도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턴테이블은 꼭 다이렉트 드라이브를 사리라 마음먹었다.


다이렉트 드라이브는 모터와 휠을 기계로 연결하기 때문에 벨트 드라이브와 달리 회전수가 늦어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앞에 스트로보 램프를 설치해놔서 회전수를 눈으로 확인하기도 하고 스위치를 이용해 회전수를 미세 조정할 수도 있었다. 나는 당연히 다이렉트 드라이브가 더 앞선 방식이고 값도 더 비쌀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고가의 오디오 세계에서는 다이렉트 드라이브는 주워온 자식 정도 취급을 받더라. 하이엔드 오디오는 여전히 벨트 드라이브를 고수하더라는 말이지.


그 오디오는 이역만리 사우디에서 수명을 다했다. 삼십 년도 더 쓴 셈이다. 중간에 턴테이블은 바꿨다. 오디오는 같은 것을 계속 사용했는데, 음질을 생각해서 고른 것이 아니고 그 이상 기대하지도 않았으니 망가져서 못 쓰게 되지 않는 한 버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우디에 부임할 때까지만 해도 집에 사람이 있으면 늘 노래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LP와 테이프만 듣던 것이 거기에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가 붙고 나중엔 CD 플레이어까지 붙었다. 스피커는 한 번 바꾸고. DVD가 나왔을 때쯤 파이오니아 오디오로 바꿨다. 인켈 오디오가 망가진 건 아니고. 지겹기도 하고, 지겨워서 다른 오디오를 살 정도의 여유는 있었거든.


누군가 조언한 대로 음반을 사니 오디오가 따라오는 게 맞기는 하더라. 그래서 오디오를 손에 넣었을 때 음반이 이미 백 장이 넘었다. 그 백 장 넘는 음반을 쌓아놓고 하나씩 뜯어가며 들었을 때 느꼈던 감격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다.


결혼 하고 아이를 얻었을 때 아내가 오디오를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다. 일하는데 자꾸 칭얼대니까 동그란 스톨에 아이를 앉혀놓고 헤드폰을 씌워주면 아주 조용해지더라고 했다. 어쩌면 그때 들었던 노래가, 음악을 가까이 하는 분위기가 그의 인생을 결정짓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독일 비스바덴 오페라극장에서 주역 가수로 활동하는 베이스 박영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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