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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28. 2023

[피렌체의 식탁] 무함마드 빈 살만

 2023년 6월 26일 일자


사우디와 이 나라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에 관한 궁정 정치 드라마 같은 책이 나왔다. 저자는 뉴욕타임스의 이스탄불 지국장인 벤 허버드다. 사우디는 최근 몇 년 새 전 세계 외교와 경제 무대의 새 뉴스메이커로 부상했다. 사우디가 미국이 짠 1945년 이후의 중동 질서에서 변화 또는 이탈을 모색하면서부터다. 한국에겐 최근 그가 추진하는 네옴시티 개발 계획 등으로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며 다른 큰 시장을 찾아야 하는 절박함에서 기인한 것이다. 칼럼 필자이자 이 책의 역자인 박인식 전 사우디 법인장은 2009년부터 2021년까지의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돈 많은 나라’, ‘세계 최고 부자 빈 살만’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 저자인 벤 허버드도 비슷하다. 허버드는 나아가 MBS가 왜 개혁 군주인지, 왜 잔인한 폭군인지 실감나게 전한다. 읽다 보면 어느 쪽이 더 진실인지도 알게 된다. 한여름의 독서, 사우디 및 중동 투자의 바이블로 이 책을 추천한다는 게 역자이자 칼럼 필자의 의견이다. [편집자 주]


사우디에서 13년… 책의 번역을 맡기까지


작년 11월 사우디 왕세자가 한국에 다녀간 이후로 한동안 사우디 관련 기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기사 대부분이 장밋빛 일색이었다. 한 발짝만 떨어지면 빈틈이 무수하게 보이는데, 그런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사우디라면 모두 돈이 넘치는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사우디에서 십삼 년을 버텼다. 변변한 성과 하나 거둔 것 없이. 허접한 성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사우디에 대한 내 시각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사우디를 너무 몰랐던 것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고, 사우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쏟아내는 보도가 그 짐의 무게를 더했다.


귀국하고 나서 사우디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적지 않았지만 의아할 정도로 나와 같은 생각을 찾기 어려웠다.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칼럼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분에 넘치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귀국하고 나서 불과 한 해라는 짧은 시간에 사우디에서는 지난 십삼 년간 일어났던 것보다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견해는 오히려 사우디에 대한 오해를 조장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양했다.


얼마 후 실질적인 사우디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MBS)에 대한 책을 번역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주제에 넘는 일이라고 생각하다가 몇 장을 읽어보고는 덜컥 그러마고 했다. 무엇보다 저자의 시각이 나와 같다는 점이 반가웠고, 한편으로는 안심도 되었다.


그곳에서 십삼 년 일했고, MBS의 등장을 지켜봤고, 누구보다 그 내막을 궁금해했지만 지금껏 MBS에 대해 제대로 정리된 글을 보지 못했다. 2009년 초에 부임했으니 그가 권력의 중심으로 등장하기 이전의 사우디부터 지켜본 셈이고, 2021년 말 그곳을 떠났으니 그가 권력을 행사한 과정을 어지간히 지켜봤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는 해도 사우디는 언론이 통제된 곳이어서 겉으로 드러난 기사만으로 상황을 짐작해야 했다. 그러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비로소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가졌던 많은 궁금증을 풀 기회를 얻은 셈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중동의 새로운 지배자>(필자 역) 발간을 열흘쯤 앞두고 <빈 살만의 두 얼굴>도 발간되었다. 아마 내가 첫 번째 독자였을 것이다. 두 책이 다루고 있는 범위와 깊이가 사안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였을 뿐 내용이 서로 어긋난 부분은 없었다. 우선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두 책 모두 인물에 치중하고 있다 보니 그것만으로 사우디의 현 상황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것이 아쉬워 편집자를 조르다시피 해서 사우디 상황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조망한 해제를 긴 분량으로 실었다. 넋두리를 받아준 편집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그것이 두 책을 가르는 분수령이 된 듯해 면이 좀 서게 되었다.


연이어 쏟아지는 사업계획… 사업비만 1조 달러


사우디의 2022년 국가 예산은 2,787억 달러고 2021년 인당 GDP는 2만 3,585달러다. 한국의 2022년 국가 예산은 5,087억 달러고 2021년 인당 GDP는 3만 4,757달러다. 사우디의 국가 예산이 한국의 절반 조금 넘고 인당 GDP는 한국의 3분의 2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사우디는 한국에 비해 인구도 적어 국가 경제 규모의 척도인 GDP는 2021년 기준 사우디 8,335억 달러로 우리나라 1조 7,960억 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우디가 원유 수출로 올린 수입은 유가가 가장 낮았던 2020년에는 1,120억 달러, 2021년에는 유가가 올라 1,825억 달러, 연평균 유가가 100달러에 근접했던 2022년에는 2,590억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참고로 삼성전자의 2021년 매출액은 2,444억 달러였다. 결국 유가가 정점에 있을 때 사우디가 원유 수출로 올린 한 해 수입이 삼성전자 한 해 매출액과 비슷한 규모라는 것이다.


사우디의 실제 권력인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를 이해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누구는 그의 재산이 2조 달러라고 이야기한다. 그 금액은 사우디가 7~8년 열심히 원유를 수출해야 올릴 수 있는 수입이고, 사우디의 6년 치 국가 예산과 맞먹으며, 애플과 세계 최대 기업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사우디 아람코의 시가총액보다도 크다.


더구나 그는 아버지 살만 국왕이 2015년 즉위하기 전에는 권력 서열을 따질 형편에도 미치지 못했던 사람이다. 사우디 신문에 MBS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살만이 국왕으로 즉위할 무렵이 아닌가 싶다. 살만은 2015년 1월 국왕으로 즉위하자마자 자신이 맡고 있던 국방부장관 자리를 MBS에게 넘겨줬다. 베일에 싸였던 그가 1985년생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국방부 장관 자리에 오르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그러니 MBS가 권력을 쥐고 재산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멀리 잡아도 살만이 왕세제 자리에 오른 2012년 이후일 것이다. 결국 2조 달러라는 그의 재산은 국유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는 한 불가능한 숫자다. 물론 재산이 정말 그 정도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는 의미다. 또한 그가 원하면 무엇이든, 그것이 국유재산이든 사유재산이든 가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2017년 왕세자에 오른 MBS는 그해 10월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에서 네옴 건설계획을 발표한 것을 필두로 엄청난 규모의 사업계획을 연이어 쏟아냈다. 신도시 네옴 건설 5,000억 달러, 홍해 리조트 개발 300억 달러, 선사 유적지 알울라 개발 150억 달러, 리야드 인근의 종합 레저 타운인 키디야 개발 640억 달러, 리야드 인근의 왕가 발원지 디리야 복원 500억 달러. 이밖에 아시르 국립공원 개발, 제2국영항공사 설립, 리야드 공항을 세계 최대 규모로 확장하는 사업은 사업비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2023년 2월에는 리야드에 가로 세로 높이가 모두 400미터인 ‘무캅’이라는 마천루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3월에는 기존의 사우디에어에 이어 두 번째 국영항공사인 리야드에어를 설립하고 370억 달러를 들여 보잉 드림라이너 787을 72대 발주했다. 같은 달에 세 번째 국영항공사인 네옴에어라인을 설립해 2024년에 영업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발표한 사업에 소요되는 비용은 1조 달러가 훌쩍 넘는다. 많은 사람이 예상하는 대로 네옴 사업비가 두 배 이상 증가할 경우 전체 사업비는 2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해 원유를 수출해서 올릴 수 있는 수입이 최대 2,500억 달러, 한 해 국가 예산도 그 정도인 나라에서 불과 10년 안에 2조 달러에 육박하는 사업비를 어떻게 조달하겠다는 것일까?


사우디의 권력은 이미 MBS의 손안에


물론 아람코도 있고 국부 펀드로 유명한 공공투자기금(PIF)도 있지만 이 큰 사업비를 감당할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결국 외부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사실 사우디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발주되는 사업의 상당수가 민간투자에 의존하고 있다. 발전소의 경우 민간이 사업비를 대고 준공 후 전력 판매 대금으로 사업비를 회수하는 구조다. 왕세자가 추진하는 거대 사업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민간투자로 추진될 것이다. 물론 사우디 정부에서 지급보증을 서겠지만 사업이 엎어지거나 추진이 지지부진해지면 그 부담은 투자 기업이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


그러니 노다지라고 생각했던 사업들은 재원도 마련되어 있지 않고 성공 가능성도 불투명하며 걸림돌이 사방에 널려있는 어쩌면 도박에 가까운 사업일지도 모른다. 재원이 없으니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하고 걸림돌도 많아 투자 유치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왕세자가 작년 11월 방한해 글로벌 기업의 총수들을 만난 것이다. 결국 그 자리는 사업을 맡기겠다고 선심 쓰는 자리가 아니라 투자를 부탁하는 자리일 수밖에 없고, 기업 소식통을 통해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다.


사우디는 명실공히 전제 왕정 국가다. 모든 법령은 왕명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되고, 의회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슈라위원회는 국왕 자문 기구에 지나지 않는다. 국왕의 권력을 통제할 아무런 장치가 없다는 말이다. 사우디의 권력은 이미 MBS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문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넣은 그가 자신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권력의 실세가 되고 난 후 발표한 정책이나 계획 중에 이해하기 어렵고 즉흥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더욱이 그 계획 하나하나가 국운을 걸어야 할 만큼 엄청난 재원이 소요되는 일이니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도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불투명함과 불확실성이라는 문제


2021년 2월, 사우디 정부는 중동사업본부를 사우디로 옮기지 않는 기업은 입찰에 참여시키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몇몇 기업이 중동사업본부를 리야드로 옮겼다는 기사가 나기는 했지만 영 지지부진했다. 한국 기업 중에도 이전을 고려하는 경우가 없어 이유를 물어보니 정책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다고 했다. 어느 기업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불확실성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사우디는 이처럼 돈을 쌓아놓고 사는 나라가 아니다. 게다가 정책 결정 과정이 불투명할 뿐 아니라 언제 그 정책이 뒤집힐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시장이다. 하지만 뭔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실현 가능성이 있건 없건 하겠다고 벌여놓은 일이 천문학적인 규모에 이르고, 그중 일부는 이미 발주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시장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써놓고 나니 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국내 건설 시장은 이미 포화되어 생존을 위해서는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어디 하나 만만한 시장이 있을까. 기업으로서는 사면초가인 상황이다. 그렇기는 해도 나는 우리 기업이 그런 난관을 모두 극복해 낼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국 기업이 사우디 시장에 진출한 역사가 그랬기 때문이다. 지금은 당시 사우디 시장에 진출한 것을 신화처럼 여기지만, 그 신화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은 기업인들의 땀과 피로 이루어진 실체이다. 수많은 난관이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과거에도 잘 극복했으니 앞으로도 잘 대응해 나갈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우디 시장을 차지하는 일이 무모해 보이는 것은 다르지 않다. 다만, 무모한 용기만으로 시장을 차지하는 일이 더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다를 뿐.


앞서 언급한 사우디 시장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위험 요소 중 불확실성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 원천은 MBS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그가 국운을 걸고 추진하는 사업의 성공 가능성이나 재원 확보 방안도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하지만 MBS의 결정에 이의를 다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라는 것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등장하고 나서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기까지 과정을 알아야 한다.


사우디가 위험 요소가 많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겨냥해야 하는 시장인 것도 사실이다. 알고 나면 매를 피할 수 있고, 어쩔 수 없이 맞는다 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옮긴이로서 이 책이 그저 흥미를 돋우는 책을 넘어서 그런 역할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쓴이 박인식은


고려대학교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원전 지질조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82년 말 벽산엔지니어링으로 옮겨 원전을 포함한 사회 기반 시설 지질조사와 설계에 참여했다. 2009년 초 사우디 현지법인인 벽산아라비아에 부임해 근무하다가 2021년 말 귀국한 후 현재까지 본사 전문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압둘라 국왕 재임 시절부터 살만 국왕이 즉위하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세로 등장하기까지 사우디아라비아 격동의 세월을 현지에서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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