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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18.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11)

우리 가곡 음반을 사고 나서 음악시간에 배운 기억을 더듬어 클래식 음반을 하나둘 사기 시작했다. 음악 시간에 배웠거나 들어본 곡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성음에서 나오는 데카, 필립스 레이블이 대부분이었고 나중에는 그라모폰 레이블이 주류를 이루었다. 가끔 폰타나 레이블도 있었다. 그 중에서 우선 귀에 익은 작곡가인 베토벤으로부터 시작해 슈베르트, 모차르트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에 성음에서 발매한 음반 목록을 책으로 엮어서 연초에 음반 가게에 나눠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 하나 얻어서 클래식 음반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거기에는 수록곡과 연주자가 모두 들어 있어서 음반 살 계획을 세우는데 여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듣다 보니 지휘자나 연주자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을 알기는 했는데, 그렇게 비교하며 듣는 것은 차차 하기로 하고 우선 제목으로만 알았던 음반의 목록을 만들었다. 몇 년 동안 그렇게 만든 목록을 하나씩 지워가는 낙으로 살았다.


그렇게 모은 LP가 천여 장 됐다. 처음에는 음반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놓고 궁리를 많이 했다. 작곡가를 기준으로 할 것인지 음악 형태를 기준 삼을 것인지, 아니면 연주자에 따라 정리할 것인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작곡가를 알파벳 순서로 정리하고, 그 안에서는 대곡에서 시작해 소품으로 가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교향곡, 협주곡, 독주곡, 소품 순으로 말이다. 그렇게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리해놨으니 누군가 음반에 손을 대면 귀신 같이 알아차렸다.


지금 사용하는 CD나 DVD는 한 면 밖에 없지만 LP는 양면에 곡이 실렸다. 잠깐 나오다 사라진 레이저디스크(LD)도 양면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쪽에 실린 곡만 보고 음반을 사다가 같은 음반을 두 번 사는 웃지 못 할 일도 생겼다. 한 번은 A면에 실린 곡 때문에, 다음번에는 B면에 실린 곡을 들으려고.


기록에는 CD 음반이 발매된 것이 80년대 초반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 CD 음반이 대세를 이룬 것은 그보다 5~6년은 늦었지 싶다. 그것은 어쩌면 내 개인적인 기준인지 모르겠다. 내가 남보다 CD를 늦게 받아들였다는 말이다. 그러니 LP를 십 년쯤 모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젊었을 때는 그게 무엇이 됐든지 서너 개가 넘어가면 반드시 목록을 만들어야 했다. 음반이 꽤 모였을 무렵에 목록을 살펴봤더니 음반 구매 패턴이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걸 알 수 있었다. 베토벤에서 모차르트를 지나 슈베르트로 가다가, 한동안 합창으로 빠졌다가, 영화음악으로 갔다가, 바흐로 돌아갔다가, 재즈로 바뀌는. 그때쯤 같은 곡을 서로 다른 연주자들이 연주한 것을 비교해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클래식 음반만 고집하지는 않았다. 길을 걷다가 좋은 음악이 들리면 곡명을 알아내고, 누군가의 추천을 받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때로는 합창으로, 영화음악으로, 재즈로 갈아타더라는 말이지. 참,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이름을 몰라서 두어 달 알 만한 사람들을 볼 때 마다 노래를 웅얼거리며 물어본 일도 있다. CD, LD, DVD를 사기 시작하고도 목록 작성은 계속 이어졌다. 아쉽게도 그 아까운 기록을 언제인지도 모르게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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