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3.07.18 (화)

by 박인식

서울에 돌아오고 나서부터 대학생 자녀를 둔 사십대 직장인이 이끌어 가는 독서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오늘 모임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단 참석자가 여느 때와는 달랐다. 우크라이나에서 나고 자라 고국의 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 대학생, 우리말 의사소통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20대 후반 국제인권기구 미국인 직원, 그리고 평범한 새내기 대학생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대학생과 미국인 직원이 우리말에 조금 더 익숙해지도록 돕자는 취지로 시작했고, 그래서 오늘부터 다섯 주 연속으로 화요모임을 갖기로 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동화책을 차례로 읽어나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그 중 1장과 2장.


각자가 쓴 질문지를 하나씩 열어보면서 동화 주인공인 닭장에 갇혀 있는 산란용 암탉의 생각을 헤아려 보기도 했고, 계획했던 일이 틀어졌을 때 어떤 생각이 들고 어떻게 대처하는지 묻기도 했고, 살아오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동화를 바라보는 모습이나 질문에 대한 반응이 다를 것이라고 짐작하기는 했지만 짐작했던 것보다도 생각의 차이가 컸던 것도 그렇고, 그 차이가 일정한 경향을 보인다는 점도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우리와 서구인의 차이를 농경사회와 유목사회가 지닌 특질의 차이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농경사회는 수백 년 한곳에서 집단을 이루며 살아왔기 때문에 낯선 이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집단의 신뢰를 잃고선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원만한 관계를 위해 어느 정도 자기희생을 감수하고, 약속을 입증하기 위해 굳이 문서를 남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유목사회는 이와 반대로 낯선 이에게 쉽게 말을 걸고, 원만한 관계를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약속을 입증하는 형식에 아주 익숙하다.


참석자 셋 중에 특히 새내기 대학생 둘의 시각차가 크게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학생은 농경사회의 특징이, 유럽에서 나고 자란 학생은 유목사회의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나더라는 것이지. 같은 국민인데도 나고 자란 토양에 따라 사고방식이 크게 다르더라는 것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한국 학생은 원만한 관계를 위해 다소간의 자기희생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고 유럽에서 온 학생은 당연히 자기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혜인이네가 오면 시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다섯 번 모두 참석하기는 어렵겠지만 가능한 여러 번 참석해서 두 학생의 차이를 살펴볼 생각이다. 아울러 유럽에서 온 학생과 미국인 직원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는지, 있다면 시간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왔는지 살펴보는 것도 꽤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나는 그 두 사람의 우리말 표현을 도와주는 역할이기는 한데, 돕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훨씬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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