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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27.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15)

CD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LP를 더 이상 사지 않게 되었다. CD가 음질이 좋기도 했지만 한 면이 25분 남짓한 LP에 비해서 두 배 이상 길게 들을 수 있는 게 큰 장점이었다. 게다가 리모컨으로 트랙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어서 편리한 것으로는 LP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물론 LP도 트랙을 선택해 들을 수 있지만 음악다방에서 신청곡을 틀어줄 때나 그렇게 하지 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데. 당시 음악 애호가 중에서는 CD를 영 몹쓸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음색이 차갑다나 어쨌다나 뭐 그랬다. 나는 LP에서 들리는 잡음이 없어져서 좋기만 했는데, 그 잡음이 들려야 마음이 편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음질 같은 건 따지지도 않았다. 오디오를 갖고 나서 집에서 언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너무 크게 틀어놔서 어머니께 꾸중도 많이 들었다. 사실 방음이 잘되지도 않은 좁은 방에서 음질이 달라봐야 그 차이가 얼마나 나겠나. 그러다가 친구 집에서 제대로 된 오디오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집에서 한동안 음악 들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차이가 커도 너무 컸다. 며칠 고민하다가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쳐다봐야 뭐 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 음질에 대한 욕심을 접기로 했다. 오디오 하나 사자고 학원에서 일 년이나 아르바이트 하며 적금을 든 형편에 다른 오디오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 그때 오디오 대신 음반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지 싶다. 오디오에 욕심을 내다보면 음반을 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디오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고 나니 음질이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음질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편이다. 싸구려 귀라는 말이지.


그렇게 CD를 모으다가 영상에 눈 뜨게 된 일이 있었다. 90년도에 스웨덴 출장 갔을 때 호텔에서 TV로 쓰리테너 콘서트를 보게 되었다. 그해 여름에 있었던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 전야제로 열린 것이었다. 그걸 보면서 이젠 음악이 듣기만 하는 시대가 끝나간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전에 레이저디스크(LD)가 발매가 되기는 했지만 워낙 고가여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플레이어가 이백만 원이나 했는데 그건 융자를 받아서라도 해결할 수 있었지만 LD 음반이 문제였다. 한 장에 무려 십만 원이나 했다.


당시 대학로 ‘바로크’ 위층에 ‘슈만과 클라라’라는 레스토랑이 생겼다. ‘바로크’ 주인인 임원빈 사장이 음악 애호가들을 위해서 마련한 곳이었다. 그래서 홀 전면에 커다란 스크린을 걸어놓고 LD를 틀어줬다. 플레이어도 LD도 모두 고가여서 가질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그곳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나 같은 손님들이 많았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LD를 비디오테이프에 복사해주기 시작했다. 그때 LD 한 장 복사하는데 이천 원인가 그랬다. 하이파이 비디오테이프로 복사하면 조금 더 비쌌다. 별 차이도 없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LD를 사기 전까지 그곳에서 상당히 많은 영상을 복사해왔다. 처음 복사한 것이 아마 ‘사운드 오브 뮤직’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영화는 극장에서만 열 번 넘게 봤고, 이후에 LD와 DVD로도 숱하게 봤다. 백 번까지는 아닌 것 같고, 오십 번은 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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