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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29.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16)

스웨덴 출장에서 돌아와 신세계 앞 지하상가를 찾았다. 쓰리테너 콘서트 LD가 들어와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처음으로 LD 가격이 얼만지 물어봤다가 기겁을 하고 돌아섰던 그 가게였다. 진열장에 그 LD가 놓여있었다. 옆에는 89년도 비엔나 필하모니 신년음악회 LD가 있었고.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그 유명한 음반이었다. 바깥에서 구경만 하다가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가격이나 확인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가 삼만 원이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 십만 원 하던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때부터 한동안 LD 사 모으는데 정신이 팔렸다.


쓰리테너 콘서트야 이미 TV에서 봤으니 그 음반이 내 것이 되었다는 것 말고는 신기할 것이 없었는데 비엔나 필하모니의 신년음악회를 보면서는 감탄을 쏟아내기 바빴다. 비엔나 뮤직페라인홀의 아름다운 무대도 그렇고 슈트라우스 왈츠와 폴카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하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그때부터 그의 팬이 되었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그가 지휘하는 음반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영상은 더욱 없었고.


2009년 사우디 현지법인에 부임하면서 영어 이름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망설임 없이 카를로스로 정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나를 카를로스로 부른다. 내 이름만 듣고 히스패닉인 줄 알았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다음 따라오는 질문이야 뻔한 것이고. 왜 그 이름을 썼느냐는 거지. 그럴 때마다 열변을 토해가며 그가 얼마나 대단한 지휘자인지 설명하곤 했다. 사실 그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없고 음반 몇 개 말고는 들어본 것도 없으면서. 그저 아버지 에리히 클라이버가 유명한 지휘자였다는 것, 베를린에서 태어났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자라서 원래 칼(Karl)이었던 이름을 카를로스(Carlos)로 바꿨다는 정도 아는 게 전부였는데.


2005년 가을에 아내와 비엔나 갔을 때 아쉽게도 뮤직페라인홀에 연주 일정이 없었다. 그날따라 극장투어도 없었다. 그곳까지 가서 뮤직페라인홀을 보지 않고 돌아서야 하는 게 너무 억울했다. 다짜고짜 사무실로 들어가서 책임자쯤 되 보이는 사람에게 내가 무척 먼 곳에서 왔는데 정말 이곳을 보고 싶어서 그러니 잠깐만 안을 돌아보게 해주면 안 되겠냐고 사정을 했다. 귀담아 듣는 것 같아서 기대를 걸었지만 돌아온 건 싸늘한 거절 뿐.


아무튼 첫 번째로 쓰리테너 콘서트와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신년음악회 음반을 사고 이후에도 해외출장 때마다 음반 가게를 뒤졌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LD가 몇 종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LD 찾는다고 동경 아키하바라나 런던 피커딜리 서커스를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하지만 음반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고 영화만 눈에 띠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백 장 남짓한 LD 중에 절반은 영화다. 당시 가수 전영록이 외국 영화 1,500여 편을 소장하고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모두 LD였다. LD 종류가 좀처럼 늘어나지 않은 건 그때 막 출시되기 시작한 DVD 때문이었다. LD만 볼 때는 화질이 비디오테이프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DVD를 보고나니 LD에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았다. LD를 틀지 않으니 플레이어도 망가지고. 리야드 이웃에 살던 분이 아직 플레이어를 갖고 계셔서 돌아오기 전에 그분에게 모두 넘겨드렸다. LD로 샀던 음반은 DVD로 다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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