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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31.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17)

영화 LD를 적지 않게 사기는 했지만 대부분 뮤지컬 영화였으니 음반에서 영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물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던가 <해바라기> 같은 것도 있기는 했다. 당시 샀던 뮤지컬 LD로는 아내와 첫 데이트 때 봤던 <메리 포핀스>, 중학교 때 단체관람 했던 <남태평양>, 아이 낳고 가족이 함께 본 <애니>와 <미녀와 야수> 정도가 기억난다. 그때 오십 여장에 지나지 않았던 클래식 LD 중에 지금까지 내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몇 장 있다. 모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열린 갈라 콘서트 음반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오페라 전체를 감상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저 귀에 익은 아리아를 골라 들을 때였다. 어느 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개관 100주년 갈라 콘서트 LD를 보고는 망설이지 않고 집어 들었다. 이름만으로 입이 벌어질만한 음악가들이 한 무대에 선 것이니 왜 그렇지 않았겠나. 쓰리 테너는 말할 것도 없고 전설이라고 할 만한 그레이스 범브리, 몽세라 까바예, 레온타인 프라이스, 조안 서덜랜드까지. 비르기트 닐손은 은퇴한지 이미 오래 되어 인사만 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동의어로 여겨지던 제임스 레바인이 대부분 지휘했고 번슈타인도 몇 곡 지휘했다. 그리고 그 음반에서 베이스바리톤 루제로 라이몬디와 소프라노 안나 토모와 신토우를 만났다.


한참 뒤에 자식이 성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뜬금없이 루제로 라이몬디가 떠올랐다.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었던 모양이다. 자식이 아비를 설득해야 하는 첫 관문을 넘을 때 그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니, 자식에게는 은인이 아닐 수 없겠다. 그가 그 무대에서 불렀던 <La Calunnia>를 훗날 자식이 무대에서 부르는 것을 들으면서 참 감개무량했다. 무척 장신이어서 키가 2미터 가까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오히려 자식보다 작다. 그 후로 몇 년 지나서 그가 베르디 오페라 ‘에르나니’에서 <Infelice e tuo credevi> 부른 것을 보게 되었다. 얼마나 감동이 되었던지 자식이 그 노래 부르는 것을 보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되었다. ‘에르나니’는 좀처럼 무대에 오르지 않으니 언제 볼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다.


100주년 갈라 콘서트에서 안나 토모와 신토우가 불렀던 ‘에르나니’ 엘비라의 아리아 <Ernani involami>는 지금껏 그보다 잘 부른 것을 듣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에르나니’가 참 좋은 작품인데 지금껏 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언젠가 자식이 안나 토모와 신토우 마스터클라스에 참가한 일이 있었다. 그때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나? 한 번 찾아봐야겠다.


100주년 갈라 콘서트를 보고나서 거기서 열린 공연 음반을 보이는 대로 샀다. LD와 DVD를 포함해서 열 장은 족히 넘었지 싶다. 1991년 링컨센터 무대 25주년 갈라 콘서트, 1996년 제임스 레바인 25주년 갈라 콘서트. 제임스 레바인이 피아노 반주한 파바로티 독창회 음반도 있었다. 그때는 자식이 성악을 시작하기 전이었지만 그때 받았던 오페라 무대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자식의 선택을 지지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구나. 아, 어쩌면 자식이 그 음반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그 음반이 지지의 원동력이었을 뿐 아니라 선택의 원동력이기도 했다는 말이 아니냐. 그것 참. 그리고 십 년쯤 지나 그곳에 가서 직접 오페라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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