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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ug 01.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18)

대학로 ‘바로크’에는 음악애호가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근처에 있는 서울대학병원 의사들 뿐 아니라 나름 손꼽히는 음반 수집가들이 많았다. 저녁 때 가면 언제든 몇몇 애호가들이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가게가 넓기는 했지만 그들이 편히 앉아서 이야기 나눌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그래서 ‘바로크’에서 가게 옆에 ‘올댓재즈’라는 재즈클럽을 열었다. 그저 열 평이나 되었을까 싶은 좁은 공간이었지만 들여놓은 음향기기가 어마어마했다. 예나 지금이나 오디오에는 관심이 없으니 그때 있던 것들이 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삼천만 원인가 들였다는 것만 기억난다. 80년대 말이었으니 어지간한 집 한 채 값이 아니었을까. 이후에 ‘바로크’ 지하층 넓은 곳으로 옮겼다.


‘올댓재즈’에서는 이름 그대로 재즈를 주로 틀었다. ‘바로크’에서 위층에 ‘슈만과 클라라’라는 레스토랑도 열었고 클래식 애호가들은 그곳을 찾았다. 그러다가 음반을 틀어주던 재즈클럽이었던 ‘올댓재즈’는 길 건너 샘터 사옥 뒤편으로 옮겨 재즈를 직접 연주하는 재즈클럽이 되었다. 하지만 개업 할 때 몇 번 빼고 재즈클럽에 갔던 기억이 별로 없다. 재즈에는 이미 맛이 들려서 Bill Evans, Miles Davis, Stan Gets, John Coltrane 음반을 줄줄이 사들였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당시 나는 삼십 중반으로 직장생활 중에 가장 바빴던 때였다. 집에 있는 날보다 출장 간 날이 더 많았으니 재즈클럽에 갈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그곳을 다시 찾았더니 재즈클럽은 그대로인데 이름이 ‘천년동안도’로 바뀌었다. ‘천년동안도’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재즈클럽이 생긴 것이 87년, ‘천년동안도’로 바뀐 것이 96년, 그리고 인사동 지금 위치로 옮긴 것이 2018년이다. 주인은 바뀌지 않은 채였고. 검색해보니 ‘바로크’ 임 사장께서 ‘올댓재즈’를 본격적인 재즈클럽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 ‘천년동안도’이고 ‘천 년 동안 재즈를 이어갈 섬(島)’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단다. 그곳은 음식 값이 비싼 편이었는데 그것으로 출연료 감당하기도 빠듯했다고 한다.


대학 갓 들어갔을 때 다녔던 미군 클럽에서 느꼈던 라이브 공연의 맛을 그곳에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천년동안도’에는 국내 정상급 연주자들이 출연했다. 신관웅, 이정식으로 이어지는 재즈밴드에서부터 객원 출연한 KBS 오케스트라 단원까지. 그 중에서 가장 매력을 느껴 자주 찾았던 공연은 한상원 밴드였다. 버클리 음대 출신으로 스스로 펑크 기타리스트라고 강조하는 그의 밴드 공연은 어깨를 들썩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 만큼 다이내믹했다. 객쩍은 농담 따위는 일절 없었어도 한상원 밴드의 공연은 늘 위트가 넘치고 흥에 겨웠다. 껑충한 키에 박박 깍은 머리, 거기에 심 봉사가 썼음직한 작고 동그란 검은색 선글라스. 뭔가 어울리지 않을 법한 것만 모아놓은 그의 모습이 그의 익살스러운 몸짓과 어울려 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미국에서 재즈를 공부했다는 김현정이라는 가수가 등장했다. 큰 키는 아니었는데 몸집이 있는 편이었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편한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어울리는 복장은 아니어서 의아해하다가 노래를 시작하고 나선 이런저런 거 따질 겨를 없이 그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그는 몇 년 뒤, BMK라는 이름으로 ‘나는 가수다’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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