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리 매킨타이어
노윤기 역
위즈덤하우스
2022년 11월 16일
독서방송에서 소개한 책 제목만 듣고 읽기로 마음먹었다. 과학이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모양만 다를 뿐이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과학 부정론자(Science Denier)가 하나둘이 아닌데, 도대체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 부정론을 15년간 연구한 저자가 ‘평평한 지구 국제학회(Flat Earth International Conference)’에 참석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말을 비유로 이해했는데 실제로 그런 모임이 있다는 게 아니냐.
이 책은 제목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그들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나는 저자의 의도와 달리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하는데 관심을 두었다.
저자는 과학 부정론자들의 바탕에 확증편향(conformation bias)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자기 신념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편향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반하는 증거는 극단적인 편견을 앞세워 거부한다는 것이다.
“확증편향이 작동하면 믿고 싶은 것을 뒷받침하는 것만 찾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시한다. 여기에 익숙해지면 판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확인하기 위해 증거를 찾는다. 그리고 자기들이 그렇게 수집한 사실에 대해 과학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편향적이라며 그들을 끊임없이 비판한다.”
사실 이런 문제는 비단 과학 부정론자와 관계된 것만은 아니다. 사회를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모든 음모론의 생성 과정이 이와 다르지 않다. 저자도 과학적 논쟁이 정치적 논쟁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가짜 전문가는 과학적 논증의 결과로 합의된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사용할 체리피킹하거나 조작한 증거를 제시한다. 이 증거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의혹을 더욱 키우며 집단적 논증을 이어간다. 그 결과 과학적 논쟁은 정치적 논쟁을 닮아가기 시작한다.”
“음모론은 추측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증거에 근거하지 않는다. 실질적인 근거가 없는 순수한 추측이다. 이는 검증을 시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음모론자들은 사실이 폭로되었을 때조차 그것을 계속해서 믿는다. 음모론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낮은 어느 것이 증명의 과정 없이 사실로 정당화된 믿음이다. 하지만 힘센 집단의 조직적인 캠페인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다. 음모론은 반증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이론을 포기하지 않는다. 많은 증거를 고려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음모 자체를 증거가 부족하거나 확인될 수 없는 증거가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설명한 것처럼 음모론이 추측을 기반으로 생성되는 것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음모론은 의도적인 것이고, 그 의도가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서 더 심각하고 더 절망적이고 더 파괴적이다. 다시 과학 부정론으로 돌아가 보자.
“과학 부정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어떤 이론이 100% 확증되기 전까지는 모든 비판을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어떤 이론도 100% 확증되는 게 불가능하다. 그들은 이를 근거로 소수 전문가 의견을 다수 의견에 우선하는 행위를 정당화 한다. 과학이 완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 번도 과학을 공부해본 일이 없는 이들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우리는 과학 부정론자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을 흔하게 본다. ‘백신이 100% 안전한가요? 지구온난화에 대한 다른 증거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나요? 흡연과 폐암 사이의 인과관계는 결정적으로 밝혀진 적이 없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과학적 가설에는 언제나 약간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찔리는 게 있다. 사실 나는 지금도 지구온난화에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바로 저자가 언급한 기후변화 부정론자의 주장과 같다.
“기후변화 부정론자가 ‘이산화탄소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경우 이것이야말로 상대방의 주장 중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하는 허수아비 논법의 완벽한 예이다. 책임감 있는 기후과학자라면 자연적 요인을 포함해 기후변화의 요인이 많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시점에서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가장 심각하면서도 급속도로 증가하는 원인은 인간이 일으키는 이산화탄소 배출이다.”
내가 지구온난화에 회의적인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복잡계(複雜系, complex system)의 대표적인 존재인 지구가 이산화탄소 배출이라는 요인만으로 온난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한 가지 이유이고, 이산화탄소 배출과 지구온난화가 상관관계를 이룬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인과관계는 반대일 수 있다는 것이 다른 한 가지 이유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베리아 동토가 온난화로 녹으면서 그 안에 갇혀있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지금도 이 두 가지 주장을 거둘 생각은 없지만, 앞으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 사안을 생각해야겠다.
저자가 예시한 여러 사례 중에 백신 거부운동과 유전자변형작물 거부운동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두 경우 모두 사회에 큰 폐해를 끼쳤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1998년 영국 앤들 웨이크필드라는 의사는 MMR 백신이 자폐증과 인과관계를 보여주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공저자들은 논문에서 자기 이름을 삭제했고, 나중에 그것을 출판했던 권위 있는 의학잡지도 그 논문을 철회했으며, 웨이크필드는 의사면허를 박탈당했다. 훗날 이 연구결과가 우발적인 실수가 아니라 노골적인 사기라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자폐아동의 부모들은 웨이크필드를 자신들을 옹호하는 영웅으로 여기며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MMR 백신과 자폐증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는 논문이 수없이 발표되었는데도 수천 명의 부모들은 자녀의 예방 접종을 보류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적으로 번져갔다.”
“유전자변형작물(GMO)이란 영양과 성장과 방어능력을 개선하기 위해 분자에 변형을 가한 농산물이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자신들이 먹는 음식 대부분이 유전적으로 변형된 식품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오늘날 옥수수의 85%는 인공선택과 유전자변형의 결과물이다. 살충제를 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충 저항성이 있는 옥수수 품종도 개발되었다. 유전자변형은 멸종되었을지도 모를 파파야 산업을 살려냈다. 대두, 옥수수, 목화는 유전자변형의 대표 작물이다. 미국과학진흥협회는 세계보건기구, 미국의학협회, 미국국립과학원, 영국왕립학회, 그리고 기타 모든 권위 있는 기관이 사실관계를 따져본 결과 모두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유전자변형작물을 섭취하는 것은 종래의 식물개량기술로 변형된 작물을 섭취하는 것보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유럽에서는 GMO 표기가 의무화되어 있고,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어나는 공포마케팅은 무지한 대중을 상대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2018년 퓨 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이 GMO가 인간 건강에 큰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5년 같은 여론조사에서 미국과학진흥협회 회원 가운데 88%가 GMO를 안전한 식품으로 생각한 반면 일반 대중은 37%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이 여론조사 결과가 놀라운 것은 일반 대중의 63%가 GMO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과학자 중에도 12%나 그런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GMO 반대자들이 과학적 연구를 더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GMO 전면 금지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소송과 홍보에 몰두하고 GMO 작물이 자라는 들판을 파괴했으며, 그 결과 거의 20년 동안 유럽에서 재배를 위한 유전자변형작물 승인은 단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GMO 기술은 살충제 사용을 37% 줄였으며 온실가스 배출을 2,600만 톤 줄였다. 그린피스가 GMO 작물에 대한 세계적인 금지 목표를 달성한다면 더 많은 농경지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더 많은 삼림을 벌채하고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해야 한다. 1960년경에 자연농업기술만 고집하느라 다른 가능성을 외면했다면 오늘날 지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남아메리카 대륙 두 개가 필요했을 것이다. 잠비아 정부는 2002년 심각한 기근을 맞이했지만 굶주린 사람들이 수입한 GMO 옥수수를 먹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국민 수 천 명이 사망했다. 잠비아 대통령이 세계식량계획에서 제공한 유전자변형 옥수수가 어떤 방식으로든 인체에 유해하다는 서구 환경단체의 거짓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 저자가 의도한 과학 부정론자들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하는 주제로 돌아가 보자. 그것도 즐겁고 생산적인 방법으로.
“연구자들은 사람의 모든 신념이 정보뿐 아니라 정서적인 요인에 따라 형성된다는 이전의 연구결과에 주목해왔다. 이미 어떤 정치인을 깊이 응원해왔다면 적은 양의 부정적인 정보는 오히려 지지도를 높인다. 사람들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자기감정을 개입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신념을 바꿀지 말지 결정할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정치인을 어떤 이유로 지지했는지 상관없이 부정적인 정보가 일정 정도 이상 누적되면 결국 선택을 포기하는 수준에 도달한다. 어느 시점이 되면 유권자들이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생각을 바꾸기 시작한다. 합리적인 업데이트 프로세스가 작동하는 것이다.”
아무리 주장이 강한 사람이라도 자기 신념과 상반되는 정보에 흔들리기 시작하는 티핑포인트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보만으로 그런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 정보와 아울러 감정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대시하는 것으로 그의 지지를 얻을 수는 없다. 믿음은 정보와 감성이 결합해 형성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자아나 정체성이 위협을 느낄 경우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온 힘을 다해 반발한다.”
저자는 감정을 억제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경청하고, 항상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 토론하되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그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상대방이 그런 의견을 가지게 된 배경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사실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마지막 요령은 기가 막히다.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은 자기 생각을 바꾸는 일을 세상이 무너지는 일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다. 의아하면서도 그럴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그들의 심경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도록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앉아 인내와 존중의 자세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끈질기게 따라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설득력 있고 편견 없는 정보로 마음을 바꾼 사람들이 일주일 지난 후에 거짓 진술을 부분적으로 다시 믿었고 사실 정보가 진실이라는 정보도 부분적으로 잊었다. 개인이 일시적으로 자신 신념을 업데이트하려 한다고 해도 사실과 허구에 대한 설명 모두 유효기간이 있다. 사람의 생각을 온전히 바꾸는 것은 단순히 정보 부족을 극복하는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변화라는 어려운 과업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은 정말 어렵다. 가능하기는 한 건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