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청년성가대에서 몇 년을 보냈다. 교회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이 하나둘 청년부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여서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즐겁기도 했고 나이든 대원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체질에 맞지 않았다. 청년성가대 시작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아들도 함께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좋았는데 청년들은 불편했겠다. 그러니 아들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더구나 아비가 대장이었으니 행동도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고. 아무튼 나는 그 때 늘 즐거웠다.
내가 청년성가대에 들어가기 전에 수고했던 지휘자는 교회음악계에서는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뛰어난 분이었지만 음악적인 완성도를 너무 강조하는 통에 대원들이 견디지 못해 떠나고 결국 지휘자 본인도 교회를 떠난 상태였다. 새로 부임한 지휘자는 아직 성악과를 졸업하지 않은 학생이었어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기량이 출중했고 무엇보다 대원들을 격려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러면서도 대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지휘자 바리톤 왕광렬 선생은 개인적으로는 자식의 성악적 발판을 탄탄하게 세워준 은인이었지만, 대장으로서도 함께 호흡을 맞춰 성가대를 회복시키고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청년성가대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던 좋은 파트너이기도 했다. 청년성가대는 그때까지 청년예배 때 찬양을 담당하는 것 말고 특별히 순서를 맡은 것이 없었다. 그런 청년 성가대가 음악극을 준비해 발표를 하기도 하고 성탄절 점등예배 때 특별한 순서를 마련해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경험을 교우들에게 선물했다.
David Clydesdale이 편곡한 음악극 How Great Thou Art를 준비했던 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편곡자 이름과 45분이나 되는 전곡을 빠짐없이 기억할 정도이다. 악보는 구했는데 어떤 식으로 표현을 해야 하는지 막연했다. 게다가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교회에서 그런 행사를 한 경험도 없고 계획에 없으니 예산도 없었지만 의욕만 가지고 덤벼들었다. 아마존에 오케스트라 악보와 연주음반을 신청하고,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를 꾸리고, 대원들을 독려해 두 달 넘게 준비를 마쳤다. 행사 준비 막바지에는 하루 서너 시간씩 연습해 대원들이 기진맥진하기도 했다.
간혹 실내악 수준의 연주는 있었지만 오케스트라 규모로 연주한 것은 교회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준비할 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아 상당히 서운했어도 연주를 마치고 쏟아지는 칭찬에 지휘자와 대원들 모두 큰 위로를 받았고, 자연스럽게 다음 번 행사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내게는 가사 번역과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회가 되었다. 복사본으로 구한 악보에 누군가 한글로 가사를 번역해놨지만 가사와 음악적 강세가 맞지 않아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지휘자와 상의해가며 가사 상당 부분을 고쳤다.
당시 지휘자가 선교합창단을 이끌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곡을 찾았다며 내게 가사 번역을 부탁했다. 일하면서 이런저런 번역을 할 기회가 많았지만 이건 전혀 다른 번역이었다. 악보와 글자 수를 맞추는 것부터 음의 높낮이와 강세와 발음을 맞추는 것까지. 모든 것을 치밀하게 맞춰야 해서 마치 복잡한 수식을 푸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가사를 번역한 노래가 그 선교합창단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었고 음반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후에 적지 않은 이들이 그 노래를 불렀다. 신기한 경험이기는 했는데, 아쉽게도 악보도 남아있지 않고 이젠 그 노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일로 교회 음악행사에 오케스트라가 서는 일이 드물지 않게 생겼고 음악행사의 질과 양이 크게 향상되었다. 남성성가대가 생긴 것도 이 분위기에 힘입은 바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