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몇 달 앞두고 내게 성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집안에 예체능 소질이 있는 사람도 없고 그것으로 먹고사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내게는 몹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한 마디로 안 된다고 했을 텐데 무슨 조화였는지 왜 성악이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자기는 노래하는 게 정말 좋고, 평생 아이들에게 노래 가르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엉뚱하다 싶기는 했지만 성악가가 되어서 이름을 날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음악 선생이 되어서 아이들 가르치고 싶다는 것이니 허황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생각해보자고 대답은 했는데 아는 게 없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마침 아내와 함께 속해있는 성가대 지휘자가 성악 전공자이니 거기에 물어보면 되겠다 싶었다. 지휘자도 흔쾌히 그러마고 해서 연합고사 보고 나서 만나기로 했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다. 고압적인 아비였으니 평소 같았으면 성악을 하겠다는 말에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며 한 마디로 묵살했을 것이다. 아이 말에 귀를 기울였다고 해도 가까이에 성악 하는 이가 없었으면 유야무야 됐을지도 모른다. 정말 운이 좋았다. 그런데 그게 그저 운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들이 성악과에 들어가고 나서도 몇 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이던 여름에 아내를 따라 동네에 있는 교회에 새벽기도를 몇 달 나간 일이 있다. 기도라면 5분 넘기기가 바빴던 사람이니 눈을 감아도 막막하기만 했다. 뭘 기도할까 생각하다가 아이 생각이 났고, 그래서 아이 앞길을 잘 살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아내 따라 겨우 몇 달 새벽기도 나가 그것도 머리 쥐어짜내 가며 드린 기도를 그분은 허투루 여기지 않으셨던 것이다.
연합고사 보기 전날 밤에 갑자기 아이가 이가 아프다며 뒹굴었다.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가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시험 전날 밤이 아닌가. 밤새 병원에서 볶아치다가 시험을 못 치를 수도 있고 시험을 치른다 해도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제 성적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왕좌왕하다가 아이 머리를 감싸 안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는 그게 유일한 선택지였다. 기도하느라 얼마나 용을 썼던지 옷이 땀으로 젖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거짓말처럼 잠이 들었다.
잘 자고 일어나 시험 잘 보고, 그날 저녁에 바리톤 왕광렬 선생을 만나 성악에 첫 발을 내딛었다. 성악을 하겠다는 말에 귀를 기울였고, 마침 속해있던 성가대 지휘자가 유능한 성악 선생님이었고, 시험 전날 이가 아프다며 뒹굴던 아이가 편안히 숙면을 취하고, 시험 마친 날 저녁 성악의 첫 발을 뗄 수 있었던 것 모두가 그분의 손길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