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맺은 인연 (23)

by 박인식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성악 선생께서 가르치셨다. 아이의 기량이 느는지 그대로인지 구분할 만큼 아는 게 없기도 했지만, 아이의 기량이 늘지 않는다고 선생님을 바꾸는 것이 결코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제든 바뀔 수 있다면 선생님으로서는 성과를 보여야 하고, 성과를 보이기 위해서는 기초를 닦는데 시간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내외는 성악 공부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선생님과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하고 그 선생님의 결정을 온전히 신뢰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대학 입학하고 나서 지도교수님 뿐 아니라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한결같이 나쁜 버릇이 들지 않았다는 칭찬을 받았다. 지루하기는 했지만 반 년 가까이 오직 발성에만 치중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성악을 시작하고 나니 콩쿠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지금 어느 정도 실력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나무가 속이 비었는데도 그렇게 높이 자랄 수 있는 건 매듭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콩쿠르를 매듭으로 여기기로 했다. 어느 정도 공부하고 나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는 정도로 여긴 것이다. 콩쿠르 몇 번 나가보니 어느 대학을 갈 수 있을지 정도는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콩쿠르에서 경쟁했던 학생들을 보고 나서 성악 선생께서 다니던 대학을 목표로 삼았다. 성악 선생께서 당시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고 음대 재학생으로 이루어진 선교합창단 지휘를 맡았기 때문에 자주 학교를 가보기도 하고 그곳에서 레슨을 받기도 했다. 나는 그 경험이 대입 실기시험 때 크게 도움이 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장소에 익숙해있거나 평소에 그곳에서 노래를 불러봤다면 덜 긴장 되고 그래서 실수를 덜 하는 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실기시험은 수년 동안 준비한 것을 불과 몇 분 안에 보여줘야 하는 일이다. 한 번 실수하면 만회할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준비한 곡을 흔들림 없이 부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실기시험을 얼마 앞두고 성악 선생께서 노래를 바꾸겠다고 했다. 아이의 음색과 기량을 더 잘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곡을 찾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반대했다. 내가 음악에 대해 뭘 안다고 반대했겠는가마는, 나는 그것이 음악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몇 년 준비한 것을 실수 한 번으로 물거품을 만들 수는 없는 일. 나는 아이가 그 대학에 합격할 수준은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당시까지 준비된 것을 실수 없이 잘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준비한 만큼 부를 수 있도록 하자고 이야기하니 선생께서도 흔쾌히 동의했다. 공교롭게도 시험 당일 아이는 실기시험에 가장 치명적인 감기에 걸려 실기시험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누워있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삼 년 동안 불렀던 곡을 어려움 없이 준비한 만큼 부를 수 있었다.


몇 년 준비한 기량을 단지 몇 분 안에 평가받는다는 건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제도가 그렇다면 이에 전략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옳았다.


H002.jpg <아들을 지도하신 바리톤 왕광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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