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앨리슨
정혜윤 옮김
세종서적
2018년 1월 22일
며칠 전에 미중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것은 대만 갈등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확언하는 <이미 시작된 전쟁>을 읽었다. 그 책의 저자는 그에 대처하는 해법으로 우리가 북한을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놀라운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나는 미중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질 경우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는데, 그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중국이 대만을 합병하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책의 저자도 나름의 이유를 설명했지만 그것으로도 내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마침 미중 갈등을 다룬 <예정된 전쟁>을 올해 독서목록에 올려놓아서 앞의 책에서 얻지 못한 답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인 그레이엄 앨리슨은 하버드 케네디스쿨 학장을 역임했고 공화당의 레이건 정부와 민주당의 클린턴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 특보와 국방부 차관보를 지냈다. 그의 이력으로 보아 내 의문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언급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표면적인 사건 하나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고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당사국들의 직접적인 의도가 무엇이든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지배세력을 대체할 정도로 위협적일 경우 그에 따른 구조적인 압박이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현상은 법칙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자인 그레이엄 앨리슨은 이것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명명하고 하버드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저자와 연구진은 지난 500년 동안 기존의 패권국가와 부상하는 패권국가가 대결했던 상황이 16번 일어났는데 그중 12번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밝혀냈다.
저자의 표현을 인용해놓고 나니 ‘America First’를 부르짖었던 트럼프가 떠오른다. 싱가포르의 이광요 수상은 시진핑이 집권했을 당시 “시진핑은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고 짚은 일이 있었다. 저자는 시진핑이 꾸고 있다는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서양이 침범해 오기 전에 중국이 아시아에서 누렸던 지배적인 영향력을 다시 회복한다. 둘째, 신장과 티베트 뿐 아니라 홍콩과 대만의 지배권을 다시 세운다. 셋째, 과거의 세력을 회복해 주변 국가들로부터 존대를 받는다. 넷째, 각종 세계기구에서 다른 강국들에게 존중을 보이라고 요구한다.”
말하자면 중화사상이 바로 그의 정치철학이자 국가지도자로서 그의 존재이유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자칫 국가가 궤멸될 수도 있는 피해를 감내해가면서까지 대만 갈등 때문에 미중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설명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미중 갈등이 전쟁 확률 75%인 ‘투키디데스의 함정’의 전형적인 사례라면 대만 갈등은 ‘표면적인 사건 하나’에 불과한 것이고, 그렇다면 미중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대만 갈등이 없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을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수십 년 안에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할 가능성은 그냥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다”는 주장의 근거를 하나씩 살펴보자.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한동안 미국이 세계경제의 50%를 차지했지만 1980년에 이르러서는 22%로 내려갔고 지금은 30년간 두 자릿수 경제성장을 이루어온 중국의 추격으로 16%까지 줄어들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30년 후에는 11%까지 하락할 것이다. 반면에 1980년 세계경제의 2%였던 중국경제는 2013년 18%로 급등했고 2040년경이면 30%를 훌쩍 넘길 것으로 예측된다.”
“1869년과 1913년 사이에 미국은 연평균 4% 정도 성장해 세계최대의 경제대국이 되어 유럽 자본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중국경제는 1980년 이후로 연간 10% 성장했다. 72를 연평균 성장률로 나누어 경제가 두 배가 되는 시기를 결정하는 72법칙에 따르면 중국경제는 7년마다 두 배가 되었다는 뜻이다. 중국경제는 2008년 이전까지 평균 10% 성장을 보이던 것이 2015년과 2016년 연간 6~7%로 성장세가 낮아졌다. 그 사이 세계 경제성장률은 거의 절반으로 내려앉았다. 세계경제가 중국경제에 의해 좌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세계 고등학생들 간의 교육 수행능력을 비교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의 수학 분야에서 중국은 6위였고 미국은 39위였다. 공학분야에서는 중국의 칭화대학교가 MIT를 앞질러서 세계 최고의 대학이 되었다. 공학분야 10위권 학교 중에서 중국과 미국 대학교가 각각 네 개씩 포함되었다. 과학기술분야 대학교 졸업생 수는 중국이 미국의 네 배에 달한다. 2015년 중국인들은 특허권을 미국보다 두 배나 많이 신청해 한 해 동안 100만 개 이상 특허권을 신청한 첫 번째 나라가 되었다. 중국은 여전히 지적재산권을 도둑질하고 기업 스파이 활동의 온상으로 남아있지만 해마다 자체적으로 힘을 키워가고 있는 중국의 혁신능력은 갈수록 무시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위에 언급된 사실로 보아 이제는 세계 최대패권국가인 미국이 그 자리를 부상하는 패권국가인 중국에게 위협받는 상황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75%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전쟁을 일으킬 75%인 국가일까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25%인 국가일까?
“시진핑은 고르바초프가 경제를 개혁하기 전에 사회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을 완화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결론지었다. 소련 군대를 국가에 속한 것으로 만든 것도 잘못이었다고 판단한다. 국가가 아니라 당과 지도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만들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적들이 체제를 전복하려고 나섰을 때 일어나서 맞서 싸울 만한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개인적인 성향은 75%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이라는 나라는 어떤가? 저자는 한국전쟁과 중소국경분쟁에서 보여준 중국의 태도를 점검한다.
“오랜 내전을 치른 뒤에 자기 나라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중국의 지도자가 과연 5년 전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려서 일본을 으스러뜨리고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초강대국을 함부로 공격할까 생각했지만, 중국 군대는 한국전쟁에 투입되어 빠른 속도로 미군을 제압하고 전쟁 이전에 남북을 가르고 있던 지점까지 밀고 내려왔다.”
“1969년에 소련 지도자들은 중국이 핵 능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나라에 선제공격을 감행하는 방식으로 중소국경분쟁에 대응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모택동은 국경 부근에서 전쟁을 시작해 자기 나라를 지도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는 적인 소련 앞에서도 절대 위축되지 않으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를 보면 중국이라는 국가의 결정 또한 시진핑 개인의 결정과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어느 쪽이 이기든 전쟁으로 얻는 이익과 이를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심각하게 균형이 안 맞는다”며, 2016년 연구에 따르면 “비핵전쟁이 1년만 지속되어도 미국은 GDP의 10% 중국은 35%나 하락할 수 있으며 양측 모두 대공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핵전쟁으로 이어진다면 두 나라 모두 완전한 폐허가 되어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은 미중 갈등을 피하려 들지 않았다.
“중국은 1996년 대만 선거에서 리덩후이를 패배시키기 위해 미사일을 퍼부어 대만을 고립시키고 상업 선박 운행을 위협했다. 미국은 항공모함 니미츠와 인디펜던스를 보냈고 중국은 뒤로 물러섰다. 대만 유권자들을 뒤흔들어놓으려던 중국의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
“2001년 4월 하이난섬 근처 상공을 비행하고 있던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가 충돌해 중국 전투기 조종사는 전사하고 미국 조종사는 중국에 불시착해 열흘 만에 풀려났다. 그러나 중국은 정찰기를 오랫동안 돌려주지 않고 정찰 기술을 빼냈다. 이후 중국은 남중국해 여기저기에 인공 섬을 건설하고, 미사일 포대를 배치하고, 중요한 바닷길에 새로운 시설을 만들이 미국의 군사력을 더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자신들의 의도가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지켜본 미국 군사전략가들이 “벼랑 끝 전술을 선호하는 중국인들의 성향이 우발적인 사건이나 오해와 결합될 경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인식을 더 강하게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현명하지 못하다거나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말이 곧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며, 전쟁은 지도자가 피하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을 때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투키디데스의 함정 프로젝트’에서 연구 대상이었던 16번의 상황 중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4번의 상황을 분석해 미중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해법 12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내게는 그 12가지가 모두 다음 두 가지 해법의 동어반복으로 여겨진다.
“첫째, 양국은 핵전쟁이 일어나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절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도자라면 이 공포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둘째, 양국은 경제 상호 의존성이 너무나 높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10년 동안 영국과 독일은 경제가 서로 밀접하게 얽혀있어서 양국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국은 전쟁을 일으켰고 그 대가는 생각했던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미중 전쟁으로 미국이 중국 제품을 사지 못하고 중국이 미국 달러를 사지 못하면 서로에게 미치는 경제적 사회적 충격은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경제가 종언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생각해보니 이 두 가지도 결국 같은 말이다. 전쟁의 대가가 너무 혹독하니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전쟁을 선택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과연 해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앞에서 시진핑이라는 개인이나 중국이라는 국가가 혹독한 대가에 아랑곳없이 전쟁을 불사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뇌출혈의 75%는 고혈압 때문에 뇌혈관의 약한 부분이 터져서 발생한단다. 이때 터진 부분을 봉합해서 뇌출혈을 막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을 뿐 아니라 혈압을 낮추지 않은 상태에서 터진 부분을 봉합하는 것은 미봉책마저 되지 못한다. 미중 갈등이 그렇다.
그렇다면 현재진행형인 대만 갈등 뿐 아니라 남중국해에서 발생한 미국과 중국 전함의 충돌, 아무도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섬들을 두고 중국과 일본이 벌이는 영토분쟁, 불안한 북한, 심지어 점점 늘어가는 경제적 다툼 모두가 뇌혈관의 약한 부분인 셈이다. 어디서나 터질 수 있고 그중 어느 한 곳을 막는다고 해서 다른 곳에서 터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원인인 고혈압을 치료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런데 과연 미중 갈등의 원인을 치료할 수 있을까? 저자가 언급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그것에 대한 대답일 수밖에 없다. 기존의 패권국가와 부상하는 패권국가가 대결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둘 중 하나는 패권국가가 되기를 포기해야 하는데, 두 국가 모두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결론은 너무도 자명하다.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참으로 답답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