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는 연극투라는 게 있다. 분장도 과장되고 몸짓도 과장되고 대사도 과장되게 표현한다. 매우 부자연스럽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서는 객석에 떨어져 앉아있는 관객에게 내용이 전달되지 않는다.
얼마 전 유명 탤런트가 연극 무대에 서면서 왜 정형화된 가짜 연기를 요구하는지 모르겠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영상으로 전달되는 연기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었는지는 몰라도 연극무대라는 특성은 도외시한 발언이 아닌가 싶었다. 마이크로 세밀한 대사까지 전달하는 드라마와 육성으로 대사를 전달해야 하는 연극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 돌아오고 연극을 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원로 배우들이 출연한 연극도 있었고 젊은 배우들이 출연한 연극도 있었지만 모두 익숙한 모습이어서 보는 동안 불편함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오늘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 젊어 보였다. 연기는 평가할 만큼 아는 바가 없고, 말이 빠르고 소리가 작아서 대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사가 부정확해 보는 내내 불편했다. 극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 그런데 관객 반응에서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문득 유명 탤런트가 언급한 연극투에 대한 반감이 그 탤런트에 국한된 것 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나 관객 모두 예전과 달라졌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관객도 젊은이들 뿐이다.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모양이다.
2006년 대학로 무대에 올라 수 차례 공연되었고 2015년 11월부터는 폐막 날짜를 정하지 않고 연속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쉬어매드니스>라는 연극이다. 미국 역사상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운 연극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앞으로는 연극투에 익숙한 노인네들 나오는 연극이나 봐야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