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대학에 들어가 바리톤 이훈 선생님 제자가 되었다. 그렇게 희망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학생이 원한다고 다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어서 잠시 마음을 졸였다. 입학한 그해던가 선생께서 독창회를 가졌는데 독창회에서 흔히 듣기 어려운 독일 가곡을 부른 것이 인상 깊었다. 찾아보니 지금 큰 손녀 다니는 독일 중학교 근처에서 공부하셨다. 앙코르 곡으로 찬송가를 부르다가 울음이 북받쳐서 잠시 멈춰야 해서 좌중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독창회 얼마 전에 부인을 잃으셨거든.
선생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척 너그러우셨다. 제자들이 다른 선생에게 레슨 받으면 노래할 때 금방 티가 나게 마련인데, 자기가 가르친 것과 다른 방식으로 노래하는 제자를 보는 게 편할 리 없고 그래서 대부분은 몹시 나무라고 심하게는 문하에서 내치는 일도 있단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그렇게 해서 나아진 게 보이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성악 세계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였다.
자식이 성악을 해서 그런지 나는 성악을 하는 이들은 금방 알아본다. 말투나 행동거지가 그렇고 옷 입는 것도 어딘가 다르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늘 단정한 차림이었다. 우리야 행사나 있어야 만나니 그래서 단정한 차림인가 보다 했는데, 아이는 평소에도 다르지 않으시다고 했다. 단정하다는 말은 대체로 밋밋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생께서는 단정하면서도 멋스러움이 넘쳤다. 남성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선생을 생각하면 우아함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이다. 아마 우리나라에 귀족이 있었다면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선생을 모시고 한 번인가 식사를 한 일이 있었다. 자식의 스승인데다가 나보다 손위이니 쉬운 자리는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몹시 어려웠던 자리로 기억한다. 말씀이 많지 않았던 것도 한 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온화한 미소 덕분에 따듯한 자리였다.
선생께서는 삶도 겉모습만큼이나 단정하셨다. 성악 전공자들은 스승과 제자가 일대일로 만나야 하기 때문에 여느 전공자들의 사제지간과 다르기는 하겠지만 유독 자식은 선생을 애틋하게 그렸다. 한국에 다니러 올 때마다 무얼 좋아하실까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고 만날 날을 앞두고 나아진 모습을 보여드릴 생각에 설레어하는 게 아비인 내게도 인상 깊었다.
재작년에 자식이 한국에 다니러 왔을 때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여서 뵙지 못했다. 그 후로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다. 요즘은 병원에 입원해 계신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매우 위중하신 모양인데, 제자들은 물론 가족도 오지 못하게 하신단다. 평소 깔끔하신 성정 그대로이신 모양이다. 자식이 뵙지도 못하고 통화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게 생겼다. 자식도 그렇고 나도 마음이 무겁다. 아직 이른 나이이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