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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ug 31. 2023

세금의 흑역사

마이클 킨ㆍ조엘 슬램로드

홍석윤 옮김

세종서적

2022년 8월 25일


세금의 역사


사람이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게 두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세금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원전에 만들어졌다는 로제타석에도 사제들의 세금을 감면했다는 내용이 들어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역사가 오래 되었으니 그로 인한 사연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영국 귀족들이 국왕에게 요구한 마그나카르타는 의회 승인 없이 세금을 부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고, 보스턴 항구에 차를 버리면서 시작된 미국독립혁명도 세금 때문에 일어났다. 세계 곳곳에서 납세자 반란이 일어났는데, 단지 세금의 과다 때문만은 아니고 정부가 납세자를 대하는 방식이니 세금 강제집행 이면에 깔린 주권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도 많다.


저자는 근대적 세금구조는 1688년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나고 이어서 프랑스와 벌인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의 정치적 상황이 안정되면서 처음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당시 영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동력이 바로 이러한 근대적 세금구조였다고 입을 모은다. 심지어 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른 조지 워싱턴조차 현대 전쟁에서는 재정상태가 승패를 좌우한다면서, 비록 영국 정부의 부채규모가 심각할 정도이지만 근대적 세금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재정 시스템 덕분에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이 때문에 영국과 전쟁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 바도 있다.


“페리클레스 치하의 아테네에서는 국가 생산의 1/10을 세금으로 징수했고 이슬람제국의 압바스 왕조는 국가 생산의 1/3, 16세기 후반 오스만제국 치하의 이집트에서도 국가 생산의 1/3을 세금으로 징수했다. 일본은 18세기~19세기 초 도쿠가와 시대에 쌀 생산량의 30% 이상을 세금으로 징수했다. 인도 무굴제국 초기에도 국가 생산량의 1/4이 정부로 들어갔고, 네덜란드 연합주가 지배한 이후인 1688년에도 같은 세금을 징수했다.”


저자는 국가별 시대별 세율을 위와 같이 열거하면서 그 수치들이 오늘날 선진국들의 세율인 국내총생산의 1/3 수준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세금의 정의와 범위


오늘날 선진국의 세율이 1/3 수준이라는데, 그러면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우리나라의 세율도 그 정도일까? 유럽 선진국의 세율이 50%에 육박한다는 이야기에는 익숙하지만 우리나라 세율이 1/3 수준이라는 것은 좀 의아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내가 납부하는 세금을 대체로 소득세인 직접세로 좁혀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득세야 매년 세금정산서류를 받아보니 그게 얼마인지 알 수 있지만 물건 값이나 비용에 포함되어 있는 간접세는 그게 얼마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그것 뿐 아니다. 재화로 환산하지 않아서 그렇지 국민 각자가 부담하는 각종 의무 또한 세금과 다를 바 없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징용과 징병이다. 저자는 고대 이집트에서는 노동이라는 말은 세금과 동의어였으며, 진시황이 만리장성이나 대운하, 국가 도로망 같은 야심찬 공공사업을 위해 강제로 노동력을 동원한 것 역시 세금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강제 징집 또한 세금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올해부터 사병 월급이 100만 원을 넘었고 이것을 2024년까지 150만 원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하니 최저임금 수준까지 도달하는 게 그저 멀지만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 때는 사병 월급이 몇 천 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 또래들은 최소 2년 치 이상의 연봉을 세금으로 바친 셈이다.


세율을 따지는 것도 그렇다. 예컨대 자녀가 있을 경우 국가에서 각 가정에 자녀 수당을 지급할 수도 있고 그만큼을 세금 납부액에서 공제해줄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가정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동일한데 전자의 경우는 세율이 높고 후자의 경우는 세율이 낮은 것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복지 관련 항목에 국한 되는 경우만은 아니다. 요즘 정치권 언어로말하자면 ‘중 부담-중 복지’나 ‘저 부담-저 복지’나 가정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동일하지만 세율은 위의 경우와 마찬가지가 된다. 이와 같이 상황이 다른 경우에 과연 세율을 따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난 이후 지난 몇 년간 미국ㆍ일본ㆍ영국ㆍ유럽연합 등에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라는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해오고 있다. 말이 그럴듯해서 그렇지 돈 찍어내서 부채를 충당한다는 말이 아닌가. 돈을 찍어내면 돈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이는 개인의 재산이 줄어드는 결과를 만들고, 그 줄어든 재산은 돈을 찍어낸 정부로 다시 귀속되는 셈이니 결국 세금이 아니냐. 저자는 지폐가 등장하기 전에 일어났던 ‘주화의 귀금속 함량을 줄여서 실물 주화의 가치를 떨어뜨린 사례’를 들어 이를 설명하고 있다. 1세기 중반에 은 97%로 만들던 주화가 3세기에는 40%, 이는 다시 4%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양적완화의 아주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를 인플레이션 조세(inflation tax)라고도 한다.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정부가 국민들이 보유한 부의 일부를 국민들도 모르게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몰수할 수 있다.” - 케인즈


정부가 특정 기관에 특정한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는 독점권을 주는 것도 일종의 세금일 수 있다. 다른 기관이나 기업에서는 손을 대지 못하게 하고 특정 기관에서 재화나 용역을 제공할 경우 그 가격이 기업이 제공하는 경우보다 낮은 경우는 없다. 결국 독점으로 얻은 높은 수익이 국가에 편입되니 세금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세금이지만 세금으로 분류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예컨대 선박세는 수혜자 원칙에 따라 부과된 세금의 한 예이다. 저자는 “세금은 정의상 특정한 보상의 대가로 내는 돈이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혜택을 받은 대가로 내는 돈은 엄밀히 말해서 세금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정부는 특정 개인들에게만 국한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 되고 법과 질서를 보장하고 공동의 방위를 제공하는 등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위해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선박세가 유료도로와 다를 바가 없다.


책을 읽다 보니 농담이라고 여길 만큼 엉뚱한 세금이 많다. 러시아에서 적용한 ‘수염세’가 그렇다. 세금은 단지 세수를 올리려는 목적뿐만 아니라 나쁜 습관을 버리게 하거나 좋은 습관을 장려함으로서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게 하기 위해 부과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세금의 교정적(corrective) 역할이라고 한다. 세금의 교정적 역할의 사례로 결혼을 장려하기 위한 독신남세, 결혼 적령기가 지난 미혼 남성에게 부과하는 노총각세가 바로 그렇다. 요즘은 탄산음료 세금을 ‘죄악세’로 여겨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4년 캘리포니아에서 처음으로 탄산음료 세금 법안을 통과시켰고 현재 적어도 8개 지역에서 이를 시행하고 있다. 유럽ㆍ프랑스ㆍ아일랜드ㆍ노르웨이ㆍ영국 등 몇몇 선진국에도 이미 시행하고 있다.


창과 방패


세금은 죽기 전에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을 안 내고 덜 내기 위해 치열하게 격돌한다.


“16세기 폴란드와 네덜란드에서는 집의 정면이 도로에 얼마나 넓게 접하는지에 따라 재산세를 부과했다. 그러자 모두 집을 좁게 짓기 시작했다. 유럽 많은 나라에서 시가에는 일반 담배보다 낮은 세금을 부과하자 담배회사들은 세금을 낮출 목적으로 담배를 시가처럼 만들었다. 칠레에서 소형 트럭보다 승용차에 훨씬 높은 세금을 부과하자 화물칸에 천막을 씌우고 유리창을 달은 트럭을 생산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모터사이클 세금을 낮추자 뒷좌석에 긴 벤치를 설치해 8명까지 탈 수 있는 바퀴가 세 개 달린 기발한 모터사이클이 등장했다.”


이뿐 아니다. 다국적 기업을 설립하거나 조세피난처에 본사를 두어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시도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어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영국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이 영국으로 들어올 때만 과세했는데, 이 때문에 이익을 본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세금을 무한정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영국의 식품기업인 베스티그룹은 다국적기업을 설립해 아르헨티나ㆍ중국ㆍ러시아에 사업장을 두고 세금을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영국이 전쟁 때문에 본국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익에도 세금을 부과하자 베스티그룹은 본사를 소득세가 없는 아르헨티나로 옮겼다.”


저자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선택하는 곳을 조세 피난처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피난처는 피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치 범죄자가 피해자 행세를 한다는 것이지. 따라서 이를 조세 은신처(tax sanctuaries)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국가라면 당연히 내야 할 세금을 회피하거나 심지어 탈세하도록 돕는 곳, 그를 위해 낮은 세율이나 제로 세율을 제시하는 곳이라면 범죄의 소굴이 아니냐.


‘창과 방패’는 독특한 과세 제도를 갖고 있는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주 독특한 제도지만 미국은 미국 시민이 어디 거주하든 그들의 모든 소득에 세금을 매긴다. 비록 그들이 미국 밖에서 낸 세금은 공제해주기는 하지만. 미국에서는 2014년 해외에 보유한 미신고 자산을 적발할 목적으로 해외금융계좌신고법(FATCA)을 만들었는데 이 법이 발효되기 전 2년 동안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세 배나 늘었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한 국가의 세무당국이 자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소득과 자산 정보를 입수해서 그들 나라 세무당국에 제공하고 해당 국가에 대해서는 그곳에 거주하는 그 나라 국민에 대해 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방법이 세금을 탈루하려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외국기업을 유치하고 싶어 하는 나라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이의 가능성을 낮춰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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