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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16.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38)

자식이 4학년이 되면서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학이란 혜택 받은 소수에게나 주어지는 건 줄 알았는데 이십여 년 전인 당시에도 성악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병역 마치고 복학하기 전에 밀라노에서 공부한 일이 있었고 당시만 해도 성악의 본고장이 이태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유학은 당연히 그리로 가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이태리어 학원에도 꽤 오래 다녔다. 아내와 나는 유학비가 얼마나 드는지, 그걸 어떻게 마련할지 궁리했고. 따져보니 생활비며 학비까지 그 부담이 적지 않았다.


사실 자식이 독일로 유학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이태리 오페라가 압도적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태리를 성악의 본고장으로 여겼다. 독일에 바그너 오페라가 있기는 하지만 이태리 오페라에 견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때까지 바그너 오페라 중 전체를 감상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누구에겐가 독일에서는 모든 오페라를 독일어로 연주한다며 독일 오페라를 얕잡아보는 걸 들은 일도 있어서 독일은 아예 유학 대상으로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아마 졸업반 여름쯤이었을 텐데 자식이 갑자기 독일로 유학을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생각해본 일도 없는 곳이니 어학시험 준비도 안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걸 새로 준비해야 했다. 당연히 한바탕 난리가 날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순순히 자식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계획을 바꿨을 때에야 부모를 설득시킬 수 있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나와 아내도 그에 동의를 했으니 결정을 바꿨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밀라노 다녀올 때부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이태리 유학을 단 며칠 만에 별 무리 없이 독일 유학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그때 우리를 설득했던 이유 중 하나는 유학 마치고 그곳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학비가 없어 부담을 크게 덜 수도 있었고. 이태리는 워낙 유학생도 많고 거기에 비해 극장에 자리가 쉽게 나지 않아 취업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독일 극장에서는 그보다 기회가 훨씬 많고 실제로 활동하는 한국 성악가도 많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는데, 사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는 걸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독일은 입학시험을 보기 전에 먼저 사사할 교수를 만나야 한다. 그걸 콘탁(contact)이라고 하고 교수나 학교 모두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학교를 정하고 교수도 정했다. 학교는 베를린에 있는 두 곳을 정했지만 교수는 한 분만 정했다. 배수진을 친 것이다. 문제는 어학시험이었다. 독일로 방향을 바꾸고 독일어학원에 몇 달 다닌 것이 전부였으니 어학이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급한 마음으로 유학을 준비를 하는 도중에 KBS콩쿠르가 열렸다. 학생으로서 마지막 콩쿠르였던 그 대회에서 자식이 은상을 받았다. 그런데 은상에 따라온 특전이 베를린에 있는 음악대학 교수에게 레슨을 받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특전의 대상 중 한 분이 바로 자식이 사사하고 싶어 했던 교수였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참 희한한 일이었다. 유학갈 곳을 이태리에서 독일로 바꾼 것이나,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참가한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그 특전으로 만나게 된 교수가 바로 본인이 문하로 들어가려고 했던 분인 것이나, 어학준비를 거의 못했는데 어학시험을 일 년 연장 받은 것 모두. 생각할수록 섭리가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KBS 콩쿠르에 함께 입상한 소프라노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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