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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18.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39)

자식은 졸업식도 하지 못하고 KBS 콩쿠르를 마친 다음 달인 2006년 12월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베를린 한스아이슬러(Hanns Eisler Berlin) 음악대학의 하인츠 교수 문하에 들어가기를 희망하고 갔지만, 한스아이슬러는 베를린 예술대학(UDK)과 더불어 독일 음악대학의 정상을 다투는 학교인데다가 첫 시험에서 합격한 전례가 없을 만큼 입학하기가 쉽지 않은 학교였다. 입학시험까지는 몇 달 남았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첫 해에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는 진작 접었다.


그러던 중에 KBS 콩쿠르 입상자에게 주어진 특전이 바로 하인츠 교수를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별도로 콘탁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소식을 들으며 어쩌면 실패하지 않고 첫 해에 입학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몇 달 뒤 감사하게도 자식은 첫 입학시험에서 무난히 합격했고 걱정했던 어학시험은 일 년 유예를 받았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해 겨울에 일주일 휴가를 얻을 수 있어서 아내와 베를린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렇게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던 조카가 자기도 같이 가면 안 되느냐고 했다. 그저 아이들이 하는 소리려니 여겼다. 며칠 뒤 제수가 아내에게 부탁을 하더란다. 아우 내외가 맞벌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동안 아이를 데리고 여행갈 엄두를 내기 어려울 것 같다며 그렇게라도 보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셋이 떠났다.


자식은 그때 독신자 숙소에 원룸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집세도 과히 비싸지 않고 학비도 없어서 한결 짐을 덜었다. 등록할 때 30유로인가만 내면 학생증을 교통카드로 쓸 수 있어 비싼 교통비 걱정도 덜었다. 독신자 숙소라는 게 뻔한 게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체격이 큰 자식이 생활하기에는 좁아 보였지만 자식이나 우리나 모두 싱글벙글했다.


도착한 다음날 시내 구경 나간 길에 학교에 들렀다. 학교가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 있었거든. 신기한 눈으로 이곳저곳 살피는데 자식이 레슨을 받아야 한다며 같이 가서 교수님께 인사드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다 큰 자식 학교에 찾아가 교수님을 만나는 것이 어색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반갑게 맞아주셨다. 덕분에 자식 레슨 받는 것도 보고. 그때 같은 건물 어느 곳에선가 대학생인 혜인 엄마가 레슨을 받고 있었을 것이다.


주일이 되어 자식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함께 예배 드렸다. 우리가 온다고 교회에서 자식에게 헌금찬송을 맡겨주셨다. 내가 가장 즐겨 부르는 찬송이었는데, 작곡가인 성가대 지휘자께서 자식에게 맞춰 특별히 편곡을 해주셔서 더욱 뜻 깊었다. 지금도 자식과 함께 예배드릴 때면 꼭 그 찬송을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지난 달 자식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처음으로 함께 예배드릴 때도 그 찬송을 불렀다.


교회에서 당시 이미 성악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교우 한 분이 다가와 자식을 칭찬했다. 부모가 왔으니 덕담을 해주는 것이려니 했다. 그런 눈치가 보였던지 빈말이 아니라고, 정말 재능이 있어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테너 김재형 선생이다. 그분과 인연이 있었던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혜인네가 출석하는 마인츠교회에 그 가족도 출석한다. 그때 고마웠던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아직 기회가 없었다. 다음번에 가면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해야겠다.


그 며칠 되지 않는 시간에 베를린 곳곳을 둘러보고 프라하도 다녀왔다. 독일을 다녀온 후로 조카는 아이디를 베를린소녀로 바꿨다. 그리고 자기가 어른이 되면 우리를 업고 다닐 거라고 했다. 그 조카가 서른이 다 되어 가는데 우리를 업겠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공연하는 비제 오페라 '카르멘'의 돈호세로 출연한 김재형(Alfred Kim)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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