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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24.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42)

투어 마지막 순서로 그렇게 궁금해 했던 무대에 올라갔다. 이 극장의 무대가 세계에서 가장 넓고 깊다더니 정말 그랬다. 하지만 생각만큼 높지는 않았다. 사실 무대 뒤편의 높이가 무대 앞에서 보는 높이의 몇 배는 되지 않을까 짐작했었다. 어지간한 시설은 위에 매달아 놓았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설을 위에 매달아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무려 다섯 개나 되는 무대가 번갈아 앞으로 나오는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객석에서 보이는 본 무대 외에 양 옆과 뒤편에 하나씩 이렇게 세 개가 더 있었고, 놀라운 것은 본 무대 아래에서 무대가 또 하나 올라오도록 되어 있었다. 그렇게 본 무대 말고 네 개 무대에 모든 시설을 장치해놓고 순간적으로 그것을 이동시켜 장면을 전환한다는 것이다.


복도에 극장 평면도가 있어서 들여다보니 극장 전체 면적이 객석의 대여섯 배는 족히 되어 보였다. 그 넓은 객석이 극장의 일부에 지나지 않더라는 말이다. 모든 것이 짐작을 뛰어 넘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압도적인 것은 시설 뿐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인원도 마찬가지였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전날 저녁에는 베르디 <아이다> 공연이 있었고 그날 저녁에는 도니제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공연이 있었는데 그곳에 갔을 때 무대 바꾸는 작업으로 마치 전쟁터 같았다. 육중한 장치와 그것을 나르는 중장비며 사람은 또 어찌나 많은지. 안내하는 분 설명으로는 대략 2,500명 정도가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또 그 숫자만큼 더 가세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게 산업이지 어떻게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투어 내내 극장 곳곳에서 확인한 엄청난 시스템과 세계 최정상의 성악가들을 품었던 극장의 명성에 비해 객석은 장엄하거나 화려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소박했다. 극장이 크다 보니 무대가 너무 멀어서였던지 디스플레이가 의자 등받이에 있었다. 낯설기는 했지만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도 자막을 보면서 오페라를 즐길 수 있어 그게 오히려 편했다. 객석 맨 뒤편에 입석 관람객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객석 뒤편으로 자막용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있는 긴 바가 허리 높이 정도로 세워져 있어서 무언가 싶었다. 입석 관람객을 위한 스탠딩룸이었다. 작품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극장의 객석은 열 등급이 넘고 관람료는 천정 밑 객석을 제외하고는 최소 100달러가 넘고 비싼 좌석은 400달러나 한다. 그런데 스탠딩룸은 20달러에 불과하다니 꼭 오페라를 보고 싶은 사람은 매주 토요일에 한 번에 몰아서 티켓을 팔 때 줄을 서는 수고만 좀 하면 된다. 티켓 양이 아주 작아서 줄을 선다고 늘 표를 살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티켓을 사려는 사람들은 줄 서기 전에 읽을거리며 먹을거리를 잔뜩 챙겨간단다. 그렇게 해서라도 꼭 오페라를 보고 싶은 사람은 큰돈 들이지 않고 볼 수 있도록 배려한 모습이 부러웠다.


이전에 극장 홈페이지를 기웃거릴 때 보면 100달러 근처의 객석은 언제나 몇 주 전부터 매진되고 공연이 임박해지면 아주 비싼 자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객석이 다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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