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3.09.27 (수)

by 박인식

서울로 돌아온 지 두 해가 되어간다. 사우디에서 지낸 13년은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쪽은 생각도 하기 싫고 쳐다보기도 싫었다. 생각해보니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 좀 나아질까 했지만 끝내 뭐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총체적 실패였던 것이지.


돌아오기 전 몇 년은 월급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공사비를 받기 위한 소송에 매달렸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의 사업관리단이 설계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맞게 시공했다는 예외적인 평가를 내릴 만큼 성공적으로 사업을 잘 마쳤는데, 발주처인 사우디 정부는 부실시공이라는 이유로 공사비 절반을 지불하지 않았다. 자본금도 얼마 되지 않는 소규모 현지법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견디는 것으로는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매 앞에는 장사 없다는 말처럼 결국 도망치듯 리야드를 떠나야 했다.


그런데 아는 게 벼슬이라고, 지난 몇 달 사이에 사우디에 대한 책을 번역하고 몇몇 곳에서 사우디 현황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다. 돌아올 때 가졌던 실망과 회한을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다.


사실 나는 사우디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견해를 밝힐 만큼 아는 게 없다. 주재원으로서는 예외적으로 오랫동안 사우디에서 근무했지만, 한정된 분야의 한정된 사람을 만났을 뿐이다. 그러니 사우디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게 웃기는 일이다. 사우디 전문가는 개뿔.


그곳 생활을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내가 겪었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야 모르고 시작했으니 고생을 했지만 새로 오는 사람들이 굳이 같은 고생을 되풀이할 필요가 뭐 있겠나 싶어서였다. 그렇게 칠십 여 편을 정리해 교민 카페에 올렸다. 그걸 보고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이가 몇몇 있기는 했다. 그게 사우디에 처음 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글의 효용가치는 거기까지였다.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서울에 돌아와 교보문고 매대에 놓인 책을 살펴보니 굳이 출간하지 않아도 될 책이 너무 많았다. 그걸 보면서 나 하나라도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펄쩍 뛰었어도 속으로는 생각이 있었다는 말이지.


어찌어찌해서 책을 쓰기로 했다. 강력하게 권한 이가 있기는 했지만 그랬다고 마음에 없는 일을 했을까. 써놓은 것이 적지 않으니 재료는 그만하면 됐고, 편집자가 이끄는 대로 잘 따라가는 일만 남았다. 책이란 편집자가 저자의 멱살을 끌고 가면서 만드는 것이라더라. 잘되건 못 되건 모두 편집자 탓이라는 말이다. 나는 그저 쓰라는 대로 쓸 뿐. 그러니 책임질 분은 알아서 책임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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