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3.09.29 (금)

by 박인식

어머니 댁에 모여 늦은 아침을 먹고 아우가 어머니 모시고 가는 길에 안산 입구에 내려달라고 했다. 추석 연휴라고 헬스장도 문을 열지 않는데 이것저것 먹다 보니 몸이 둔해서 산길이라도 걷고 와야 할 것 같았다. 날씨는 더없이 쾌청하고, 그 좋은 날 집에만 있기도 아까웠다.


어머니 댁에 갈 때까지만 해도 산길 걸으러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어폰을 들고 가지 않았다. 쉬엄쉬엄 걸으면 세 시간도 넘게 걸리는데 그 시간에 맥없이 걷기만 하기에는 시간도 아깝고 심심하기도 할 것이라 어쩌나 싶었다.


걸을 때나 운동할 때 늘 뭔가를 듣는 게 습관이 되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는 방송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경제나 시사 현안 뿐 아니라 문학, 과학, 의학, 상식에 이르기까지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들을 수 있는 방송이 줄을 서있다. 누군가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했다더니, 정말 숨은 고수들이 사방에 널려있어 방송 들을 때마다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오늘은 그냥 걷는 데 열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들을 방법도 없고. 아무래도 방송 들으며 걷다 보면 자연을 온전히 맛보기 어렵다. 그러니 좋은 꽃도 보지 못하고 좋은 향기도 느끼지 못한 채 지나만 간다. 그것도 묶이는 것이라, 그것에서 풀려나니 무심히 지나쳤던 꽃이며 나무도 새삼스럽다. 그러던 중에 봉수대 올라가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는데. 그래, 여기 올라가려고 이어폰을 두고 왔구나.


채 삼백 미터도 되지 않는 야산이지만 올라가는 길이 꽤 가파르다. 그렇게 이삼십 분 가쁜 숨 몰아쉬다 보니 봉수대가 눈앞이다. 쾌청한 날씨 덕에 잠실도 지척이다. 선 자리에서 한 바퀴 돌면 북한산 남산 한강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우리 집도 보인다. 그러고 보면 참 좋은 곳에 사는 셈이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으니.


이어폰 잊고 나서 초가을 풍경을 얻었다. 남는 장사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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