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경란 선생은 <디어 마이 송골매>라는 소설을 발표하고 그토록 꿈에 그리던 철수 오빠의 추천사를 받아냈을 뿐 아니라 그의 방송에 초대받는 덕업일치의 영화를 누렸다. 부럽기는 했는데 따라 하자니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오늘 오페라에 관한 글을 많이 올리는 어느 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불현듯 불세출의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생각났다. 내가 그의 열렬한 팬이거든.
한 시간 남짓 유튜브를 찾아보니 이백여 편이 쉽게 모였다. 연주 영상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연습 영상도 많고 같은 작품을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것과 카라얀이나 번슈타인이 지휘한 것을 비교 분석한 영상도 있다. 인터뷰 영상도 있기는 했는데, 본인 인터뷰는 없고 모두 가족이나 지인들이다. 잠깐 살펴본 인터뷰에서 정작 본인은 인터뷰를 극도로 꺼렸다고 한다. 혹시라도 본인 인터뷰를 찾으면 대박이겠다.
사실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좋아하는 만큼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편은 아니다. 아버지 에리히 클라이버가 유명한 지휘자였다는 것, 베를린에서 태어났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자라서 원래 칼(Karl)이었던 이름을 카를로스(Carlos)로 바꿨다는 정도 아는 게 전부였다. 그를 좋아한 것도 그의 지휘가 다른 사람의 지휘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서도 아니다. 사실 그럴 만큼 내가 연주를 구분하지도 못한다. 그저 그가 지휘하는 모습에 매료되었을 뿐.
그를 알게 된 건 1989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영상 때문이었다. 그 후로 그의 팬이 되었다. 모아놓은 DVD가 고작 열 편 남짓했지만 그것을 거의 외울 정도로 자주 감상했다. 그러면서 그의 팬이 되어갔다. 그리고 2009년 사우디 현지법인에 부임하면서 영어 이름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망설임 없이 카를로스로 정했다.
사우디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금도 나를 카를로스로 부른다. 내 이름만 듣고 히스패닉인 줄 알았다는 친구들도 있다. 왜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썼느냐는 질문을 들으면 열변을 토해가며 그가 얼마나 대단한 지휘자인지 설명하곤 했다. 알아들을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 쇠귀에 경 읽기가 되기는 했지만. 셔츠에 로고 대신 카를로스라는 이름을 새기고 다니기도 했다.
그가 지휘한 영상을 모으면서 십 년쯤 공부하면 이경란 선생처럼 그에 대한 책을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이십 년이니 그래봐야 그에게 초대 받을 수도 그를 만날 수도 없겠지만. 그래서 결심했다. 십 년 뒤 가을에 팔순 기념으로 <디어 마이 카를로스> 책을 내기로, 그래서 덕업일치를 영화를 나도 한 번 누려보기로.
요즘은 유튜브에 자막 기능이 있어 영어로 된 설명은 확인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겠는데 문제는 독일어. 자막을 일일이 받아 적어 번역기를 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건 하는 수 없이 혜인 엄마에게 부탁을 해야 할 모양이다. 아들보다 며느리가 만만할 테니. 아, 어쩌면 혜인이에게 부탁해도 되겠구나. 그나저나 앞으로 십 년은 바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