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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28.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44)

출장 갈 당시 우리나라에 오염토양을 복원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조금 늦게 뛰어들어서 먼저 시장에 진출한 업체를 추격하는 입장이었다. 대형 복원사업 입찰을 준비하면서 뒤쳐진 것을 만회할 수 있는 한 방이 필요했고, 그래서 오래 전부터 그 사업을 해온 업체와 기술 제휴를 맺기로 한 것이다. 막상 가보니 미국의 규제기준이나 복원여건과 우리 것이 너무 달라서 그들이 가진 기술 중에 우리의 열세를 만회할 만한 한 방은 없었다. 그렇기는 해도 워낙 경험 없이 시작한 사업이라 며칠 지내면서 적지 않은 것을 배웠다.


자식이 유치원 다닐 때쯤부터 가깝게 지내던 교우가 있었다. 우리 애와 그 집 큰 애가 같은 유치원을 다녔고 대학 졸업할 때까지 교회학교에서 같이 자랐다. 그 집 아이들은 대학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큰 애는 뉴욕에서 작은 애는 신시내티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메트로폴리탄 극장 투어 예약해주고 함께 오페라를 봤던 교회학교 제자가 큰 애였다. 그때 마침 자식과 대학에서 함께 선교합창단 단원으로 봉사하던 친구가 신시내티 대학으로 유학을 와 있었다.


자식이 다니던 대학에 성악과와 기악과 학생을 주축으로 하는 선교합창단이 있었다. 행사가 있으면 졸업생들까지도 참석하는 역사도 깊고 끈끈한 동아리였다. 자식은 졸업해 독일로 가고 바이올린을 전공한 그 친구는 신시내티로 왔다. 자식이 선교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자식을 가르치셨던 성악 선생님이 지휘자로 수고하고 계시기도 해서 겸사겸사 따라다니다 보니 다른 단원들과도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친구가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었으니 친구 아버지로서 찾아가서 밥이라도 한 끼 먹이는 게 도리 아닌가.


그 친구를 따라 학교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신시내티 음악당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래핀의 공연이 있다며 티켓을 사놨다고 했다. 유학생이 무슨 돈이 있냐며 티켓 값을 주니 한사코 마다했다. 하긴 그때까지 자기 부모님도 다녀가지 않으셨다니 내가 반갑기는 했을 것이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공연을 즐겼다. 대신 좋은 음식점에서 저녁을 사주려 했던 계획을 바꿔 훌륭한 음식점으로 갔다.


그곳에서 식사 하면서 격조 높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친절하고 품위 있게 손님을 모시지만 그렇다고 과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식사 하는 내내 우리에게 집중하고 있기는 했는데 우리와 눈을 마주친 적도 없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필요하면 어느새 다가와 미소와 함께 서빙을 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격조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였던 것이다.


시베리아에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은 열네 살이던 1985년에 도쿄를 시작으로 뮌헨, 베를린, 헬싱키, 그리고 카네기홀에서 데뷔무대를 가졌다. 열여덟 살이던 1989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우승했으며, 거장 사이먼 래틀ㆍ발레리 게르기에프ㆍ예후디 메뉴인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그렇기는 했어도 사실 그때까지 그의 연주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때 무슨 곡을 연주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체격은 내가 압도될 정도였다.


<크게 건질 게 없었던 출장>
<신시내티 음대>
<바딤 래핀 연주회가 열린 신시내티 뮤직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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