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하나다 편집부
신희원 옮김
미디어워치
2022년 3월 7일
미중갈등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어간다. 그러다 보니 미중전쟁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인식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읽은 그레이엄 엘리슨의 <예정된 전쟁>도 그렇고 이철의 <이미 시작된 전쟁>도 그렇다. 도서관 서가에서 이와 비슷한 책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상대가 미국이 아닌 호주. 2020년에 호주가 코로나와 관련해 중국을 조사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불거진 호주와 중국의 무역 갈등은 단교가 될 것처럼 극한으로 치닫더니 다행히 요즘은 조금씩 해소가 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책의 원저자인 호주 찰스스터트 대학의 클라이브 해밀턴 교수는 호주와 중국의 전쟁이 ‘예정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해밀턴 교수의 저서인 <중국의 조용한 침공 Silent Invasion>과 <보이지 않는 붉은 손 Hidden Hand>를 일본 보수 성향의 잡지인 <월간 하나다> 편집부에서 재정리해서 풀어쓴 해설서로서, 기본적으로 일본 독자들을 대상으로 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미디어 워치>라는 곳에서 <세계 자유 보수의 총서>라는 일련의 서적으로 발간한 것이다. 출간한 출판사 이름에서 한 번 놀라고 추천사를 쓴 전 대한의사협회장 최대집이라는 이름에 한 번 더 놀랐다. 알다시피 <미디어 워치는> 극우 성향의 변희재가 설립한 매체 아닌가. 스스로를 우파로 분류하는 나조차도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치는 이들이다 보니 그들이 발간한 책을 읽어야 하나 잠깐 망설였다.
일단 경계를 풀지 않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특별히 진영논리로 볼 만한 내용이 없어 그냥 읽기로 했다. 물론 내가 인지하지 못한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어 미심쩍은 부분은 건너뛰었다.
호주는 영국,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와 함께 기밀을 공유하는 ‘Five Eyes’의 일원이다. 중국이 이 중에서 호주를 목표로 삼은 것은 바로 호주가 ‘Five Eyes’의 가장 약한 고리라고 봤기 때문이다.
호주는 이민을 많이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국가인데다가, 세계 6위에 해당하는 면적에 비해 인구가 2천5백만 명 정도로 턱없이 적고, 얼마 되지 않은 인구 중 중국계 이민자가 100만 명에 이르러 영향력이 적지 않고, 이민을 많이 받아들이다 보니 다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높다. 더구나 일찍이 백호주의로 원주민과 중국계 이민을 탄압한 역사가 있었던지라 호주 사회는 인권 문제와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높다.
중국 공산당은 이에 주목해 그 틈을 파고든다.
중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자신들이나 중국 공산당에 대해 비판하면 이것을 평범한 중국인에 대해 비판한 것으로 왜곡시켜 ‘인종차별’이라는 딱지를 붙여 무력화시킨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지은 죄가 있고 국민들도 그에 유독 민감하다 보니 그런 전략이 먹혀들어가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실제로 많은 서방 국가들이 이런 중국의 계략에 휘말려 중국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중국인에 대한 인종차별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게 중국이라는 이름은 대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지금 중국은 중공이었고. 개방이 상당히 진행되었다고는 하나 근본이 공산국가이니 매사에 제약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도 최근 상황은 오히려 이전보다 자유에 대한 제약이 더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아마 시진핑이 권력의 선두에 나선 이후로 그런 양상이 더욱 심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중국이 곧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다른 분야의 기술 격차에 비하면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중국은 그 기술을 자국민을 통제하는데 사용한다.
“중국은 전 국토에 2억 대나 되는 CCTV를 설치해 국민의 모든 부정행위를 지켜본다. 이런 감시체제는 규범의식 향상을 위해서만 강화된 것이 아니다.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당에 반대하는 인물 단속에도 사용된다. 2019년에는 위구르족을 감시하기 위한 ‘일체화 통합작전 플랫폼(IJOP)을 구축한 사실이 밝혀졌다. 휴대전화에 멀웨어(malware)를 반강제적으로 설치하고 모든 개인 정보를 분석해 위험하다고 간주된 인물 2만4천 명을 특정하고 그 중 1만5천 명을 수용소로 보냈다.”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가 환생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해외에 있는 중국계 이민자들이나 홍콩 민주화 세력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물론 중국 본토나 홍콩에서 국외로 이주한 중국계 이민자 중에는 중국 공산당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며 당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주 후에도 중국 공산당에 충성을 다하며 협조를 아까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면 중국 본토에 사는 친척들이 위험에 빠지고 비즈니스에서도 중국계 이민자와 거래가 중단되는 것 같은 제재가 가해지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국가에 사는데, 그래서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데도 현실적으로는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2008년 북경올림픽 성화가 호주 수도 캔버라를 통과할 때 중국 유학생 수만 명이 중국 국기를 흔들고 티베트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호주 정부에서 이런 문제를 예상하고 중국이 파견한 성화 호위부대가 호위 외의 어떤 업무도 하지 못하도록, 호위대가 다른 사람을 밀치거나 제재할 경우 체포하겠다는 경고를 내린 바 있었다. 그런데도 그것이 외교문제로 비화되었다거나 그들이 크게 처벌을 받았다는 뉴스를 듣지 못했다. 호주의 공권력을 우습게 알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살펴보니 중국인들이 그렇게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할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용인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7년 호주 내 중국 유학생은 13만 명에 달하며 호주국립대학 국제부 유학생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 재정수입의 15%가 중국 유학생으로부터 조달되는 호주국립대학 총장은 대학운영이 그들의 수업료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호주의 중국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호주의 퀸즈랜드대학에서는 홍콩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한 학생을 2년간 정학 처분했다. 그 학생은 정학 처분을 내릴 만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고 단지 중국 공산당의 심기를 거스를만한 행동을 했을 뿐이다. 실제로 정학처분에 해당하는 11개 죄목 대부분은 반공산당적 활동으로 보인다. 등록금 수입의 20%를 중국 유학생에 기대는 대학이 압력에 굴해 현지 학생을 내쫓은 것이다.”
저자는 이런 모습을 보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2017년 가을 초고를 완성하고 나서 출판사에서 인쇄 직전에 출간계획을 취소한 바람에 출간이 상당히 늦어졌다. 유럽과 미국 대형 출판사들은 인쇄를 중국 인쇄공장에 맡기는데, 중국 공산당에 비판적인 책을 출판할 경우 인쇄에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호주 대학 출판사에 출간을 요청했지만 대학 측에서 인쇄를 거부했다. 그 역시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중국인 유학생으로 재정의 상당 부분을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안하무인과 같은 행동은 대학에서 드물지 않은 일이 되었고 급기야 그런 행동이 용인되기에 이르렀다.
“대학 매점에 중국 공산당에 비판적인 신문인 <에포크타임스>가 눈에 띄면 큰 소리로 불쾌감을 드러내며 쓰레기통에 버린다. 수업에서 중국 영토문제를 강의하는 강사를 중국의 주장과 다르니 용서할 수 없다고 규탄한다. 중국에 비판적인 영화나 달라이 라마 강연회를 결사반대하고 결국 행사를 중단시킨다.”
중국인 사업가 하나는 시드니 공과대학에 거액을 기부하여 호주중국관계연구소를 설립해 호주의 친중 언론 발언 거점으로 삼았다. 그는 해외의 중국인들이 호주 정치에 참여해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때 영향력이란 현지 중국계 이민자가 민주주의의 가치에 기반해 자유롭게 발언하고 정치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중국 공산당 지지자를 늘리고 비판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출산율 저하의 결과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는 지방에 있는 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자조적인 농담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대학원은 진작부터 외국인 학생으로 채워졌고 이제는 학부생도 외국인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연명해 나가고 있다. 그중 상당수가 중국인 학생들이고.
간혹 지방대학 교수들에게서 중국인 유학생 때문에 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불평을 전해 듣기는 했어도 그들이 사회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본 일이 없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그럴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저자는 중국 유학생이 서구 국가에서 유학하면서 자국과 다른 가치관을 접하며 다양성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지를 빨갛게 물들이는 첨병이 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것은 ‘유학생은 중국 영향력 확대 공작의 중심적 존재’라는 시진핑의 인식이 구체화된 것으로 이해한다.
호주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관광국가라고 한다. 당연히 체류기간이 길고 돈을 많이 쓰는 중국인 관광객을 귀한 손님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드 사태 때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사태 때 호주 정부가 코로나 발생지역인 중국을 조사하자고 주장하자 인종차별이 심해졌다는 이유로 자국 관광객의 호주 방문을 금지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무기로 삼은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절대 허용하지 않는 다섯 가지 독이 있다. 달라이 라마(티베트 독립), 대만 독립, 위구르 독립, 파룬궁, 민주화 운동이다. 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이다. 그래서 자국에 대한 의존도를 인질 삼아 자기네가 독으로 여기는 다섯 가지를 축출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의존도라는 무기를 서슴지 않고 사용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외국 정부의 수뇌부가 달라이 라마와 만나면 그 나라의 대 중국 수출이 8%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으로 받아들인 것 하나는 호주의 중요 인프라 대부분이 이미 중국 자본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호주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 어떻게 호주 정부에서 그런 것을 허용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호주는 중요한 인프라 대부분을 중국 자본에 넘겼다. 호주 빅토리아 주의 전력공급회사 5개사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의 송전회사 일부가 중국 국영기업인 국가전력망공사의 지배 아래로 들어갔다. 그 외에도 송전을 포함한 전력 인프라 대부분이 중국 자본 소유다. 이 경우 중국은 멀웨어를 심을 필요도 없이 전력회사의 사람을 스파이 삼아 송전선을 자르거나 송전장치를 파괴할 필요 없이 언제든 호주 전력공급을 차단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지시를 내리는 즉시 회사 업무의 일환으로 전력공급을 차단하면 그만이다.”
저자가 예를 든 전력만 생각해보자. 어제 만난 에너지 분야의 소장 학자에 따르면 단 10초 정전으로 수백 억 원의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요즘은 전기 자동차 때문에 몇 년 안에 전력량 수요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전해줬다. 그에 비해 전력을 공급하는 전력망 시설은 답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전기를 생산해도 공급을 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단다. 그런데 하물며 전력 생산과 공급이 적국의 손에 있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더 이상 호주의 문제가 강 건너 불이 아닌 상황이 되었다. 똑같은 문제가 얼마든 언제든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짐작이 틀리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