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정
박영스토리
2023년 6월 1일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인 ‘갑질’이라는 단어가 옥스퍼드 사전에 오른 지도 몇 년 되었다. 그 무렵 현직 검사의 고발로 갑질의 피해 사례 중 하나인 미투운동이 점화되기도 했다. 평생 발주처에 목을 매는 을로 살아왔다. 그랬으면서도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으로 여겼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평생 을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나를 갑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 또한 내 갑질에 대한 피해자였을 것이다. 돌아보니 을로서도 갑으로서도 그런 문제에 무감각했다.
갑질이 문제가 되고 미투운동으로 유력 정치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나타났다. 거짓이고 모함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피해사실을 반박할 때 내미는 중요한 논리가 ‘피해자다움’이었다.
얼마 전에 읽은 <완벽한 피해자>에서 저자인 김재련 변호사는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은 “너무 무서우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너무 겁이 나면 말문이 막히고, 너무 떨리면 심장이 쪼그라들어” 사람들이 통념으로 여기는 것처럼 반응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통념적인 반응’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가해자 중심주의’이고, ‘폭력의 위력에 짓눌려 아무런 반응을 보일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피해자 중심주의’라고 설명한다.
이런 사태에 공분을 느끼면서도 가해자로 몰린 사람 중에 억울한 경우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의견을 밝힐 상황이 아니었다. 비난을 무릅써야 하는 일일 뿐 아니라 자칫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거짓 피해 신고로 인해 억울한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 갑질이나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에도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린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슬 퍼런 사회 분위기에 압도 되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을 것이고. 이와 관련해서 작년에 <직장 내 괴롭힘 허위신고 사례 분석연구>라는 논문이 ‘노동정책연구’라는 학술지에 발표된 일이 있었다. 얼마 전 그 논문을 발표했던 이가 출연한 방송을 듣게 되었다. 궁금했던 주제여서 도서관에 신간 요청을 했다.
연구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서유정은 “거짓 신고 사례 연구를 위해 178명을 면담한 결과를 연구자 세 명이 검토해 거짓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판단한 사례는 모두 분석에서 제외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게 해서 남은 126명의 사례를 정리해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것은 ‘피해자다움’의 피해에 익숙한 나로서는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이 사례들이 ‘명백히 거짓’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이 저자만의 객관적 견해가 아니길 바란다.
저자는 거짓 신고의 피해자들은 신고 당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증언조차 의심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 피해자들도 피해를 인정받기 어려운데 거짓 신고의 피해자들은 그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짓 신고는 단순히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갑질 신고가 아니라 대부분 고의적이거나 목적을 가지고 누명을 씌우는 괴롭힘이라고 말한다.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한데 저자가 거짓 신고인의 특징이라고 밝히는 내용이 하나같이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할 때 요구하는 ‘피해자다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항목이 수긍이 가면서도 그것 또한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지 몰라서 매우 조심스럽다.
1) 6개월 미만 재직자가 60~70% 이상 차지할 정도로 재직 기간이 매우 짧은 편이다.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진짜 피해자들은 최소한 6개월 이상, 대체로 15~48개월 괴롭힘을 받았다.
2)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신고한다. 신고할수록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이 점점 더 강하고 과장되게 바뀌어 간다. 진짜 피해자들은 한 번 신고하는 것도 무척 힘들어 하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3) 먼저 보상을 요구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연구사례 중 보상을 먼저 요구한 경우가 85%가 넘는다. 이에 반해 진짜 피해자들은 행위 중단, 가해자와 분리 같은 자기 보호 조치를 먼저 요구한다.
4) 서면 사과나 공개사과를 요구하기도 한다. 진짜 피해자가 이를 요구하는 건 생각보다 드물다. 이는 가해자가 자신이 받게 될 벌을 줄이기 위해 먼저 제안하거나 사측에서 원활한 해결을 위해 이렇게 사과를 받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심각한 괴롭힘을 받은 피해자는 가해자의 얼굴을 보는 것을 힘들어 하고 자신이 받은 피해가 회사 안에 공공연하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일이 드물다.
5) 경영진처럼 입지가 견고한 사람들은 결코 건드리지 않는다. 경영진이 희생양 삼을 법한 사람을 주요 타깃으로 한다.
6) 본인의 피해를 매우 과장되게 부풀려서 묘사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분노하거나 매우 큰 피해를 입은 것처럼 행동한다. 신고할 때도 감정적이고 과장된 언어를 사용한다. 신고 이후의 상황을 크게 키우려고 한다. 노동청이나 노동위원회나 경찰 또는 법원과 같은 외부 기관에 신고하고 언론에 제보하거나 또는 그렇게 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7) 업무 수행을 위한 지식이나 업무 역량이 다른 직원에 비해 뒤쳐진다.
이상에서 언급한 내용에 대해 반박할 논리는 내가 생각해도 수두룩하다. 재삼 조심스럽다는 말이다.
저자는 거짓 신고자를 가해자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을의 가면假面>이다. 을의 가면을 쓴 가해자라는 말이다. 거짓 신고의 피해자들이 받는 고통을 살펴보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표현이다.
저자는 거짓 신고자는 보통 크게 저항하지 못할 사람이나 만만한 사람을 고른다고 말한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고령자보다는 젊은 사람이, 고위 직급보다는 중간관리자 이하의 직원들이 그들에게는 훨씬 만만한데, 이들은 대체로 회사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내치기 쉬운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건을 빠르게 정리하기 위해 거짓 신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거짓 신고인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강요한다. 거기에 거짓 신고인이 노동청이나 민간 인권단체에 신고하면 그 담당자로부터도 시달리고, 가해자로 낙인찍혀 회사 안에서 입소문이나 손가락질에 시달린다. 즉 진짜 피해자와는 달리 거짓 신고 피해자는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이는 것이다. 피해자인 척하는 거짓 신고인, 진상을 제대로 조사하기보다는 책임을 떠안기려는 회사, 일방적으로 가해자로 몰아가는 외부 기관, 소문을 퍼뜨리고 손가락질 하는 동료가 적이다. 그러니 거짓 신고의 피해자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는 것이다.
특히 회사에서는 상황을 덮기 위해 급급해하는 모습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도와주지 않고 거짓 신고 피해자 혼자 대응하도록 방치하고, 거짓 신고 피해자가 거짓 신고자를 만나 개인적으로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정식으로 조사해달라는 요청은 무시하고 부당한 징계를 내리고, 그에 반발하면 인사고과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압력을 넣는다.
그러다 보니 거짓 신고 피해자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고, 견디다 못해 퇴사하기도 하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몸이 굳어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사방이 적인 셈이니 어쩌면 더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짓 신고는 거짓 신고 피해자에게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다. 거짓 신고는 진짜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의 신고를 의심하게 만들어 진짜 피해자들을 더 깊은 궁지로 몰아넣는다. 나부터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그것이 사실인지 의심하게 되지 않겠는가.
저자는 거짓 신고로 인해 몸살을 심하게 겪은 나라일수록 신고인에게 무거운 입증책임을 부과한다고 말한다. 이것 또한 심각한 피해가 아닐 수 없다. 직장 내 괴롭힘은 공개적이기보다는 개인적이고 암암리에 행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것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데 거짓 신고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들이 더 큰 고통을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아무튼 이와 같은 나라에서는 거짓 신고에 대응하기 위해 객관적 기준을 적용하고, 신고인에게 최소한의 입증 책임을 요구하고, 직장 내 괴롭힘을 담당하는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외부 기관의 신고 접수 기준을 높이고, 거짓 신고로 확인되면 거짓 신고인을 징계한다고 한다.
우리 사정은 정확히 그 반대인 셈이다. 객관적 기준도 없고, 신고인에게 입증 책임을 요구하지도 않고, 전문성도 없고, 사건을 덮기에 급급할 뿐이다.
결국 거짓 신고를 막기 위해서는 이를 시정해야 할 것인데, 객관적 기준도 입증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모두 ‘피해자다움’에서 출발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과연 ‘피해자다움’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객관적 기준을 세우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입증 책임을 요구하는 것 또한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말은 아닌지 모르겠다.
직장 내 괴롭힘을 밝히는 일과 거짓 신고를 막는 일이 창과 방패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상황을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다. 문제를 해결하자면 양측이 만나 그런 문제를 논의하는 장이 마련되어야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