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 없는 법칙이 없듯 빌런 없는 조직은 없다. 회사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친구 모임은 더더욱 그렇다.
고등학교 졸업 50주년을 맞아 1박2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175명이 왔다는데 모이는 순간부터 시간에 늦은 사람 하나 없고, 술자리도 적절할 때 잘 끝내 술자리는 늘 소란스럽게 끝난다는 상식도 뛰어넘었다. 음식 가지고 타박하는 친구도 없고 튀는 행동으로 눈쌀 찌푸리게 하는 친구도 없었다.
서울을 떠나 있으면서 친구들 모이는 소식 들을 때마다 부럽고 아쉬웠다. 돌아오자마자 친구들 만나는 자리부터 찾아 어지간한 자리엔 다 나갔다. 서울을 떠나기 전에도 친구들을 만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돌아오고 나서 만난 친구들은 예전의 친구들이 아니었다. 누구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도 지나치지 않았다. 빌런이 없으니 점점 좋아질 밖에.
이번 여행은 졸업 50주년 여행이면서 칠순여행이기도 했다. 순서를 맡아 준비한 친구들이 그동안 여행할 곳이며 먹고 자는 곳을 정하기 위해 몇 번이나 답사를 다녀왔다더라. 어느 집 음식이 맛있는지 알아본다고 이집 저집 음식 먹고 비교도 해보고. 그 나이에 찾아보기 쉽지 않은 열정을 쏟아 부어 준비했고, 준비한 만큼 흡족하게 마무리되었다.
나이는 많은 것을 바꾸어놓는다. 초연해지고 너그러워지고 부드러워지게 만든다. 나이가 이렇게 사람을 좋게만 바꾼다면 나이 먹는 건 피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아들일 일인데.
하나같이 60주년은 너무 멀단다. 55주년 정도에 한 번 끊어서 가자더라.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다음번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친구 생기는 게 겁났을 것이다. 그게 자신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고.
엊저녁 기념식 자리에서 그동안 기록해놓은 영상을 보여주는데 더는 볼 수 없는 친구들 모습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50주년 행사는 회장이 되어 자기가 준비하겠다고 설치던 친구의 아내가 나와 하늘에서도 이 모습을 부러움 반 기쁨 반으로 바라볼 거라고 하던 말에는 눈물이 찔끔 났다.
그래도 이 행사 때문에 태평양을 건너온 친구들이 열이나 되어 위로가 되었다. 마지막 식사 마치고는 헤어지는 게 아쉬워 서로 손 붙들고 발걸음을 떼지 못하더라. 사내들끼리도 이렇게 애틋할 수 있구나. 부인네들도 하룻밤 같이 보내면서 부쩍 가까워졌다. 10년이 되든 기대대로 5년이 되든 그때까지 모두들 몸 성히 잘 지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