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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02.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55)

아들은 2014년 가을 시즌 비스바덴 오페라극장으로 옮겨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에서 꼴리네 역을 맡는 것으로 그곳에서 자신의 두 번째 시대를 열었다.


독일에서 집을 얻는 일은 한국보다 훨씬 까다롭다. 원할 때 집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부동산사무실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제출하고 그곳에서 정해준 시간에 다른 희망자들과 함께 집을 방문한다. 동양인이라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행히 주인 할머니께서 오페라 팬이어서 극장에서 일한다는 것이 좋게 보였던지 생각보다 쉽게 집을 얻었다. 집이 극장에서 채 200미터도 안 떨어져 있었고, 그래서 거실 창문으로 극장에 들고 나는 모습까지 모두 지켜볼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일반 직장인들처럼 사무실에 매어 있지 않으니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 그것이 아이에게 더할 수 없이 좋은 환경이 되었다.


비스바덴은 크리스마스 시장이 예쁘기로 소문난 곳이다. 그렇지 않아도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이 범법인 사우디에서 살다 보니 크리스마스고 새해고 느낄 겨를이 없었는데 잘 되었다 싶어서 아들 첫 시즌 크리스마스에 맞춰 아이들에게 갔다.


생각대로 비스바덴 크리스마스 시장은 예뻤다. 그때 막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된 아이를 아내와 안고 업고 크리스마스 시장을 누볐다. 그 후로도 몇 년은 더 아이를 업고 다닐 수 있었다. 이제는 그때를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 자란 숙녀가 되어 있지만. 크리스마스 다음날 함께 식사했던 곳도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아름답기로 말하자면 비스바덴 극장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막간에 샴페인 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곳인 포이어 홀의 아름다움은 그중 압권이었다. 아무 곳이나 카메라를 들이대어도 작품이 나오는 곳이었다. 물론 객석도 그 못지않았다. 그 화려함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아들이 언제까지 그곳에서 노래할지는 모르겠지만 극장의 아름다움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다른 도시에서 공연할 때 몇 번 따라가 본 일도 있고 런던과 바르셀로나 오페라극장에 가본 일이 있었지만 극장 자체의 아름다움은 비스바덴극장 만한 곳을 보지 못했다.


<라보엠>은 어둡고 침울한 장면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왠지 2막 시작할 때 화려했던 모습만 기억에 남았다. 꼴리네가 친구들과 티키타카 하는 것도 유쾌했고. 아마 오페라 자체보다는 그곳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 자식일 지켜볼 수 있어서, 손녀를 업고 예쁘기로 소문난 크리스마스 시장을 누비던 즐거움 때문에 기분이 들떠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어서 바질리오 역으로 출연한 로시니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도 볼 수 있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나오는 바질리오의 아리아 <La calunnia e un venticello>를 무척 즐겨 듣는데, 웬일인지 그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아마 그때까지는 내가 아들의 노래를 마음 편히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들은 이미 전문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아들의 노래를 마음 졸이지 않고 편하게 듣기까지는 그러고도 몇 년이 더 흘러야 했다. 내가 까다로워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 마음이라는 것이 다 그렇거든.


크리스마스 시즌 끝나고 아들 스케줄이 비어있을 때 하이델베르크를 다녀왔다. 비스바덴에서 두어 시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게 아름답고 감사했다. 그러고 보니 비스바덴 교회에서 열린 오르간 연주회도 다녀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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