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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Oct 29.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54)

아들이야 새 극장에서 노래하게 되었으니 기대도 되고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다시 세워야 하니 긴장이 되었겠지만 우리야 극장장이 옮겨가면서까지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그 여름에 휴가를 보내는 동안 룰루랄라 하며 지냈다.


생각해보니 내게 우베 극장장은 아들의 잠재력을 인정한 두 번째 어른이었다. 첫 번째 어른은 아들 고등학교 때 가졌던 향상음악회에서 베이스라는 희귀한 음역 하나 만으로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해준 어느 교수 분이었다. 아들의 역량을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음역이 아무리 희귀한들 기량이 형편없었으면 그런 평가를 내렸겠는가. 우베 극장장과 다시 마주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은 깊은 감사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봄에 리허설 하는데 잠깐 들어갔다가 마주쳤을 때 얼마나 반가워하던지. 그때 리허설에 방해가 될까 싶어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아이들이야 자라면서 얼굴이 수도 없이 바뀌지만, 어떻게 바뀌어도 손주야 늘 사랑스럽지만, 혜인이가 가장 사랑스러웠던 것이 이때가 아니었나 싶다. 아내가 쾰른 공원에서 사슴에 둘러 싸여 혜인이를 안고 있는 사진은 아마 평생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자라면서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보인 것도 이때뿐이었다. 혜원이야 지금 장난기도 많고 개구쟁이 모습이 있지만 혜인이는 첫째가 되어서 그런지 늘 조심스럽고 지나치다 할 만큼 예의를 지켜 어떤 때는 안쓰럽기도 하거든. 그런데 자라면서 딱 이때 잠깐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때는 사우디에서 업무도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되어 별 걱정이 없어서인지 편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덕분에 암스테르담도 다녀왔다. 사실 암스테르담에 얽힌 조금은 엉뚱한 기억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여름방학이 꼭 한 주일이었는데, 그게 너무 아까워 방학 날 저녁에 친구 집에 모여서 자고 다음날 새벽에 인천 앞바다에 있는 시도로 캠핑 갔다가 개학 전날에야 돌아왔다. 그때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아셨으면 벼락이 떨어질 일이었지. 고삼인데. 캠핑 가서 회기동에서 놀러온 형들을 만나 한 주일 내내 함께 뒹굴었다. 그런데 형들 중 하나가 외국어대 앞에 있던 암스테르담 다방에서 DJ를 본다고 했다. 그땐 그저 ‘암 다방’이라면 통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암스테르담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그곳을 가볼 거라는 생각은 더욱 하지 못했다. 아들이 암스테르담을 가자는 말에 그 기억이 떠올라 혼자 웃고 말았다.


암스테르담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하나뿐이었다. 지휘자로는 마리스 얀손스와 리카르도 샤이가 유명했지만 사실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오케스트라 음반은 거의 대부분 버나드 하이팅크가 지휘한 것이었다. 그래서 굳이 그 오케스트라의 본산인 콘서트헤보 앞에서 싫다는 손녀를 끌어안고 사진을 찍었다. 촌놈 참 출세했다 생각하면서. 감개무량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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