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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Oct 25.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53)

아들은 쾰른 오페라 스튜디오에 소속된 연습단원으로 2년 근무를 마치고 쾰른 오페라극장 정단원이 되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되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에 그 소식을 듣고도 그런가보다 했다. 알고 보니 연습단원이 상당히 여러 명이었는데 그 중 둘만 정단원으로 승격했다는 것이었다. 그랬으니 아들로서는 그 소식을 듣고도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던 내가 섭섭하기도 했을 것이다.     


정단원으로 승격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신출내기를 면하지 못한 상태였으니 큰 역할이 주어지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다만 공연 횟수가 한 시즌에 50회나 되던 연습단원일 때에 비해 30회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조금씩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베르디 <운명의 힘>에서는 단역인 ‘알클라데’ 역을 맡았던 데서 ‘칼라트라바 후작/구아르디아노 수도원장’ 1인2역을 맡게 되었고, 푸치니 <토스카>에서는 단역인 ‘사형집행인’ 역을 맡았던 데서 조역인 ‘안젤로티’를 맡게 되었다.


또 하나 기억할 만한 일이 있었는데, 바로 베르디 <오텔로>에서 세계적인 드라마틱 테너 ‘호세 쿠라’와 공연하게 된 것이다. 직장인들도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선배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우게 마련인데 성악가들이라고 다르겠는가. 세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아마 그런 세계적인 대가들과 함께 공연하면서 아들도 나름대로 성장하고 성숙해졌을 것이다. 아들이 이후 비스바덴 오페라극장으로 옮긴 후에도 <오텔로> 뿐 아니라 <토스카>에서도 호세 쿠라와 함께 공연하게 되었다.     


사우디에서 살다 보니 시차도 한두 시간에 지나지 않아 거의 매일 영상통화로 혜인이를 보는 낙으로 살았다. 항공편도 네댓 시간이면 갈 만큼 가까워서 코로나 때를 빼고는 사우디에 살면서 매년 아이들을 보러 다닐 수 있었다. 자연히 아들이 어떤 공연을 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식도 듣게 되었다. 하지만 휴가철이나 되어야 갈 수 있고 직장 휴가철 역시 극장 휴가철이기도 하니 2012년과 2013년에는 아이들에게 갔으면서도 아들의 공연은 보지 못했다.     


2013년 8월에 아이들 집에 가니 아들이 비스바덴에 놀러 가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쾰른 극장장으로 일하던 분이 비스바덴 극장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해왔다는 것이다. 아들이 내게 의견을 물었지만 내가 조언해 줄만큼 아는 것도 없고 안다고 해도 나설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물어봤을 때는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을 정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고. 그렇지 않아도 자식을 높이 평가해줘서 고마웠는데 자기가 옮긴 극장에서 다시 불러준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지만 그때도 그것이 그리 특별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들은 이때도 내게 섭섭했을 것이다. 그저 고마운 일이라는 반응으로 그칠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우베 라우펜베르크 극장장은 아들을 오페라 스튜디오 단원으로 뽑아준 분이고, 정단원으로 승격시켜준 분이고, 게다가 다른 극장의 책임자로 옮기면서까지 아들을 불러준 분이니 우리로서는 크게 은혜를 입은 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일면식도 없던 사람을 그렇게 몇 번씩이나 예외적으로 대접했다면 그것을 단순히 호의로만 여길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아들에게서 뭔가 가능성을 발견했으니 그런 호의를 베푼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결국 그 분은 단순히 아들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이 아니라 자식의 가능성을 일찍이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끄집어 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크게 감사할 밖에.          

<비스바덴 오페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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