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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Oct 22.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52)

아마 구역예배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운전하는 도중에 큰아이를 낳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아이 울음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잠깐 눈물이 났다. 맏손자라고 끔찍이 아끼셨는데 그만 대학 들어간 것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살아계셔서 맏손자가 아이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얼마나 기쁘셨을까.


아들은 2010년 가을부터 쾰른 오페라극장의 연습단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 무대에 선 작품은 아들이 대학 입시곡으로 불렀던 자라스트로의 아리아 <들어주오! 이지스와 오지리스 신이여, O Isis und Osiris>가 나오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였다. 당연히 주역인 자라스트로 역할은 아니고 승려 역할이었지만, 그것만 해도 감격스러웠다.


유럽 오페라극장의 한 시즌은 9월에 시작해 6월에 끝난다. 그러고 7월과 8월 휴가를 보내고 다음 시즌을 시작한다. 아들은 첫 시즌에는 36회, 두 번째 시즌에는 52회 무대에 올랐다. 며느리는 결혼해 쾰른으로 이사 가면서 작곡 공부를 하던 베를린 한스아이슬러에서 학기를 모두 마치지 못하고 잠시 휴학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들이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2011년 9월에 첫 아이를 얻었다. 그 후로 아들이 쾰른극장과 비스바덴극장에서 노래를 계속하느라 베를린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며느리는 결국 다름슈타트로 옮겨 공부를 마치게 되었다. 그것도 그렇고 아이 키우느라 지기 역량을 다 꽃피우지 못하는 것 같아 늘 미안하고 안타깝다.


2010년 가을이 되어서야 아내는 리야드로 이사 왔다. 큰아이 태어날 때는 안사돈께서 뒷바라지 하시고 아내는 10월이 되어서 먼저 아이들에게 갔다. 아들이 큰아이 이름을 지어달라고 해서 슬기로울 혜(慧)자에 어질 인(仁)자를 써서 혜인이라고 했다. 평생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염원을 담았다. 혜인이를 가슴에 안고 기도하는데 아이 가슴 뛰는 게 내 가슴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그때 마음은 감격스럽다는 말 말고 달리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내와 쾰른에서 지내는 동안 아들이 모차르트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에 출연했다. 극장장께서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무대 가까이에 자리를 마련해주셨다. 당시 쾰른 극장은 한창 보수공사중이어서 쾰른 법원청사 로비에서 이 오페라를 공연했다. 쾰른 법원청사는 중앙 계단이 매우 넓고 그 주위로 넓고 긴 회랑이 있어서 계단 중앙을 무대 삼아 주변 회랑에 객석을 마련하고 출연자들은 객석 사이로 드나들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울림이 좋았고 소리도 잘 전달되어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 모차르트 오페라에 그런 작품이 있는 줄도 몰랐다. 2막으로 구성된 이 오페라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던 해 마지막으로 발표한 <마술피리>에 앞서 발표한 작품이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작품이라는 것이지. 독특하게도 티토 황제(테너)와 아들이 맡았던 근위대장 푸블리오(베이스) 역만 남성이 노래하고 중심인물인 세스토와 안니오 역은 모두 메조소프라노가 남장을 하고 노래했다.


극장장께서 자리를 마련해주신데 이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리허설도 볼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당시 쾰른 오페라극장은 우베 라우펜베르크 극장장이 이끌고 있었는데, 아들은 이 분과 쾰른극장에서 4년 비스바덴 극장에서 10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 참 끈끈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작은 그림 하나를 들고 감사의 뜻을 전하러 사무실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극장장께서 아들에 대해 좋게 평가를 해줘서 고마웠지만 그저 덕담이려니 했다. 지나고 나서 보니 덕담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런 인연이 계속되지 않았겠나. 그 우베 극장장이 연출하는 <탄호이저>가 내년 10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모양이다. 아들 공연 있을 때마다 만나면 매우 반갑게 맞아줬는데, 내년에는 내가 서울에서 그를 맞을 차례가 된 것이다.


갓 백일도 지나지 않은 혜인이를 데리고 한국 여행객들에게도 아름답기로 널리 알려진 라인강변의 뤼데스하임을 다녀왔다. 아이를 안고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아내는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모차르트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 공연이 열린 쾰른 법원 청사>
<우베 라우펜베르그 쾰른 오페라극장 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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