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한국을 떠나 있으니, 그것도 기독교 신앙이 허용되지 않는 이슬람 땅에서 살다 보니 아무래도 신앙생활이 한국에 있을 때보다 위축되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자신과 내가 가져온 믿음의 실체, 내가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보는 유익도 있었다.
떨어져서 보니 한국에서 내가 몸담고 있었던 공동체에 예수 정신과 무관한 모습이 적지 않았고, 내 스스로 그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본 일도 없었다. 특별히 소수자, 연약한 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모습은 폭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 형편이 어려운 사람, 성소수자와 양심적 병역기피자, 부녀자. 차별을 넘어 그들을 더 큰 고통 속에 몰아넣기를 주저하지 않은 무리들 가운데 나도 들어 있었다.
머지않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부딪쳐 바로 잡기엔 역부족이니 차라리 같은 가치를, 같은 믿음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찾는 것이 낫지 않겠나. 아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일단 모교회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고, 아내와 굳이 같은 교회를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창조과학이란 과학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일일 뿐 아니라, 무한한 창조주의 섭리를 유한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려다 보니 수많은 상징과 은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성경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창조과학자는 제대로 된 과학자도 아니고 제대로 된 신학자일 수도 없겠다.
지난 금요일까지 함께 교회 일을 의논하시던 장로님께서 어제 새벽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다. 수년간 신앙의 선배로, 구역식구로, 좋은 이웃으로 지내던 분이셨다. 워낙 창졸간에 당한 일인데다가 남의 땅에서 사는 신세이니 밟아야할 수속도 하나둘이 아니어서 어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조문도 못했다. 민망할 정도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오늘 저녁, 빈소에서 위로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께서 기도를 부탁하셨는데 문득 찬송을 드리고 싶었다. 목사님께 찬송으로 기도를 대신 하겠노라 양해를 구하고 찬송가를 펼쳤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찬송을 부르지 못하고 눈물만 훔치다 들어왔다.
슬픔은 위로한다고 덜어지는 게 아니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위로하셔도 다르지 않을 듯싶다. 다만 하나님의 위로는 슬픔 가운데에서 섭리와 소망을 깨닫게 하시니 말의 성찬에 지나지 않는 사람의 위로와는 본질이 다를 뿐. 그러니 슬픔을 당한 이에게 소망을 보고 감사하라는 권면은 일면 잔인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 홀연히 가족을 떠나보낸 이웃을 위해 기도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크게 달라진 게 하나 있습니다. 비록 이해되지는 않더라도 나와 다른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나는 병역을 국민의 신성한 의무로 여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건 폭력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어떤 고초를 겪고 있는지 살펴본 일이 있습니까? 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면서 자기 양심을 따르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의무를 다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병역기피, 그거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감당해야할 의무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군대보다 더 어려운 일을, 더 오래 감당하겠다고 합니다.
기독교 안에서는 그들을 인정하는 게 금기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병역을 거부해서요? 아닙니다. 그것은 명분일 뿐이에요.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함을 넘어서 나와 다름을 혐오하는 것이지요. 나는 그것이 결코 예수정신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응답자의 72%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해할 수 없지만 70%가 대체복무에 찬성한다”는 조사결과가 보도되었습니다. 사회가 성숙해져가고 있는 증표로 여겨져 반가웠습니다. 병역거부가 신념이라서 대를 이어 교도소에 가는 집도 꽤 여럿 있습니다. 마치 군대에 보내듯 교도소 문 앞에서 자식을 들여보내는 부모 사진을 본 일이 있습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양심을 부정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