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잉여일기

2023.11.16 (목)

by 박인식

장기이식 전문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존확률이 극히 낮다는 췌장암 이야기까지 흘러갔다. 그 경우 수술로 연장할 수 있는 시간이 채 일 년이 안 된다는 말에 나 같으면 그 시간을 벌자고 수술할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본인 뿐 아니라 주변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 개월, 아니 삼 개월만 시간을 벌 수 있어도 모두 수술을 택한다고 했다. 삶을 마무리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 시간을 매우 밀도 있게 살더라는 것이다.


죽음을 앞두게 되었을 때 내가 어떤 모습일까 늘 궁금했다. 평생 가져온 믿음대로 순순히 받아들일지, 어떻게든 좀 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칠지. 나는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였으면 좋겠고, 그래서 그렇게 애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몇 달이라도 시간을 벌자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니. 혹시 매일 삶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살면 그 시간이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발버둥칠 일도 줄어들 것이고.


평생의 스승이셨던 목사님께서 죽음이란 아침에 닫고 나간 책상서랍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열어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누가 열어보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늘 가지런히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지. 매일 삶을 마무리하며 살지는 못하더라도 책상서랍을 가지런히 해놓는 것이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면 발버둥칠 일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고.


399644431_6788988234470600_6625323667006068932_n.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3.10.30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