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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3.11.21 (화)

by 박인식

그간 이곳저곳에 이런저런 주제로 잡문을 적지 않게 올렸다. 그러다 보니 책을 내라고 권유하는 이들이 몇 있었다. 글 쓰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책을 내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책이라는 건 누군가 돈을 내고 사는 것이고 그러려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쓴 글 중에 유용한 구석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고 그럴 사람이 몇 될 것 같지도 않아서 책 내라는 말을 으레 하는 인사치레로 여겼다.


귀국해서 교보문고에 가보니 굳이 책으로 나오지 않아도 될 책이 너무 많았다. 신변잡기라고 여길만한 책도 많았고. 그래서 책 낼 생각을 아예 접었다. 내가 책을 내봐야 그만한 평가도 얻기 어렵고 매대만 어지럽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책을 낼 생각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뜻하지 않게 번역할 기회를 얻었다. 번역 권유를 받고 내겐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받으면 돈값을 해야 하니 말이다. 얼떨결에 책을 받기는 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한쪽으로 미뤄놓았다. 그러다 내용이 궁금해 들여다보게 되었고, 내 이름으로 된 번역서 한 권을 펴내게 되었다. 하지만 좋은 소재인데도 책은 영 기대만큼 팔리지 않았다. 애는 썼는데 애만 쓴 것 같아 아쉽고 기회를 준 출판사에도 면목이 서질 않았다. 그렇기는 했어도 덕분에 이곳저곳에 불려나가 대담도 하고 강의할 기회도 얻었다.


그래도 책을 낸다는 건 여전히 내게 해당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일은 참 알 수 없는 것이 그러다가 얼떨결에 번역서를 냈던 것처럼 얼떨결에 책을 쓰게 된 것이다. 교보문고 매대를 보고 결심했던 것이 무색하게 말이다.


이미 초고는 넘어갔으니 어떤 형태로든 책이 되어서 나오기는 할 것이다. 글 쓰는 동안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어서, 저자라는 과분한 이름도 얻게 되어서 더 말할 나위 없이 신나고 즐거웠다. 또한 늘 동경했던 글 쓰는 이들의 자리 말석에 끼어 술 한 잔 나눌 수 있어 더욱 기뻤고.


그저 친절하게 대해준 분께 감사한 마음으로 설명을 해드리겠다고 자청한 일이 경제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가 되었고, 그것이 영상으로 올라와 백 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오래 소식이 닿지 않았던 이들이 전화를 걸어오기도 하고, 생전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던 아들도 신기한지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한다.


어느 해설자가 중계하다가 예상이 어긋나니 “야구 몰라요” 그랬다더라. 나이 칠십에 “사람 사는 거 몰라요”라는 말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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