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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18.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59)

둘째 혜원이 낳고 두어 달쯤 뒤인 2018년 12월에 아이를 보러 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아들은 성남시향에서 연주하는 <바그너 갈라 콘서트>에 출연하기 위해 서울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미 유럽 무대에서 자리를 잡고 자기 연주일정을 소화하기도 벅찰 정도로 바쁘게 지냈지만 한국의 무대가  한국의 무대가 그립기는 했을 것이다. 성악가로서 자신의 연주 경력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그것을 떠나 자기의 뿌리가 있는 곳이 그리운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좀처럼 한국 무대에 설 인연은 닿지 않았다.


사실 유럽 무대에서 서면서 한국에서 연주를 갖는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우선 한 달 이상 자기 일정을 비우는 일이 쉽지도 않고, 그 먼 길을 오가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한국 음악시장의 형편상 티켓파워가 없는 연주자들에게 여행이나 체류에 필요한 경비를 지급할 만큼 넉넉하지가 않다. 아들이 자기 극장에서는 어느 정도 입지를 굳혔지만 한국 무대에는 알려지지도 않았으니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그래도 아들은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성남시향 예술감독이었던 금난새 지휘자가 끌어가는 기획연주는 강남과 분당지역에서 나름 인지도가 쌓여있던 연주회였다. 아들은 그 중 <금난새의 오페라 이야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바그너 갈라 콘서트>에 출연해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불렀다. 우리가 그 연주 때문에 서울까지 갈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어머니와 동생들이 처음으로 아들이 노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기념비적인 공연이 아닐 수 없었다.


아들이 연주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 혜인이를 데리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제 아빠를 보고 달려가는 아이를 보니 괜히 코등이 찡했다. 문득 나도 아버지와 그런 기억이 없었고 아들도 나와 그런 기억이 없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아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혜인이는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아들은 한국 연주 때문에 온전히 12월을 비워놨기 때문에 그해 겨울에는 그곳까지 가서 아들의 공연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음해 8월에 마포 상암 수변무대에서 모차르트 <마술피리>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다. 아들은 휴가를 온전히 그 공연에 맞췄다. <바그너 갈라 콘서트>에 이어진 기회인데다가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할 만한 작품이었으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쉽게 짐작이 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태풍으로 공연을 하던 도중에 막을 내려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야외공연을 앞두고 태풍이 북상한다고 해서 사우디에서 한국 일기예보를 실시간으로 챙겨보며 걱정했는데 결국 고비를 넘지 못해 몹시 아쉬웠다. 두 번째 공연이 있던 날까지 태풍의 기세가 꺾이지 않아 실내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을 마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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