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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22.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60)

코로나가 길을 막아 2년 반을 아이들에게 가지 못했다. 어지간히 잦아들 때쯤 한국인은 독일 입국이 허용된다고 해서 기대에 찼었지만 그건 한국에서 출발하는 경우에 한하는 것이고, 사우디에서 출발할 경우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이 일하는 비스바덴 극장은 공연계획 태반이 취소되었다. 2019년 가을부터 2020년 말까지는 공연이 열 손가락 꼽기도 어려웠고, 그나마 2021년부터 공연 횟수는 늘었지만 띄어앉기 정책 때문에 관객이 수십 명으로 제한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 반주는 꿈도 꾸지 못하고 피아노 반주로 오페라를 공연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아들은 2021년 7월 바그너의 연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서막에 해당하는 <라인의 황금>에 파프너 역으로 출연했다. 백신을 접종해야만 입장할 수 있었고 객석에서도 거리두기가 적용되고 있었지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비어있는 경우는 없었다. 바그너 오페라는 무엇보다도 관현악이 압권이다 보니 다른 어떤 오페라보다도 오케스트라 규모가 크다. 그래서 한정된 공간에 많은 단원이 빽빽이 않아야 하고 그만큼 감염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극장에서는 피아노 반주만으로 오페라를 공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했다. 아들은 관현악이 빠진 바그너 오페라가 실망스러울 거라면서 조심스러워했지만 그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아서 굳이 고집을 세웠다.


비스바덴극장은 실내가 아주 아름답다. 대극장도 아름답지만 홀이 아주 아름다운데 그날은 공연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만 열고 나머지는 모두 닫아놓아서 몹시 아쉬웠다. 대극장에 들어가니 커다란 오케스트라 피트에 지휘자석과 피아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피아노 반주만으로 관현악이 강조되는 바그너 오페라를 공연하는 게 과연 가능하겠는지, 오페라에 몰입하는데 방해받지나 않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니 별로 의식이 되지 않았다. 이 오페라를 관현악 반주로 공연하는 걸 본 일이 없으니 비교할 수가 없었고, 익숙한 오페라가 아니다 보니 줄거리 따라가기가 바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줄거리를 살펴보고 가서 공연을 따라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들이 맡은 파프너 역은 워낙 거인이어서 거구인 아들도 작품에서 요구하는 특징을 살리기 위해 체격을 불리는 분장을 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공연 끝나고 나서 보니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바그너 오페라는 시종일관 끊어지는 부분이 없이 노래가 이어진다. 반주도 쉴 새가 없고. 막간에 잠깐 쉰 것 말고는 공연하는 내내 피아노가 이어져서 반주자가 적어도 두 사람은 되지 않을까 했는데, 두 시간 반 동안 혼자 반주를 했다고 했다. 놀랍다고 했더니 다음날 공연하는 <발퀴레>는 무려 다섯 시간을 혼자 반주해야한다고 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아들은 그 시즌에 처음 <라인의 황금>에 출연했다. 그로서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중에 마지막 <신들의 황혼>을 뺀 세 편을 노래한 것이다. <신들의 황혼>은 성격이 달라서 출연하지 않을 거라니 이것으로 기록을 하나 더 쌓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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