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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Dec 02.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63)

아들이 노르웨이 크리스티안산의 킬든 극장에 출연한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였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는 이미 공연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였는데, 공연 평이 상당히 좋았을 뿐 아니라 함께 출연한 가수들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더라고 했다. 연습에 처음 참여했을 때는 모두들 반응이 시큰둥했었단다. 독일 오페라극장에서 일하는 ‘동양인’이 ‘모차르트 오페라’를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느냐는 표정이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연습을 함께 하고 공연이 시작되면서 그런 분위기가 호평과 관심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반갑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의아하기도 했다. 그런 평가를 받기에는 아들이 맡는 기사장 역할의 분량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돈 조반니>는 바람둥이 귀족인 돈 조반니가 약혼자가 있는 자기 딸을 유혹하는 모습에 분개한 안나의 아버지 기사장과 결투를 벌이다가 기사장을 죽이는 것으로 극이 시작되고, 석상으로 나타난 기사장이 돈 조반니를 지옥으로 끌고 내려가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등장하자마자 죽고 다시 등장하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는 말이다. 짧지만 극을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이라고는 해도 분량이 너무 적어서 공연을 보러갈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그 짧은 역할도 오페라의 처음보다는 끝에 비중이 더 실려 있어서 극이 막바지로 치달을 때까지 반신반의했던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극의 클라이맥스에서 등장해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반응이 나온 게 당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다른 가수들에 비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노르웨이 극장의 수준이 독일 극장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함께 공연했던 가수들도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에 아들의 기량이 조금 더 돋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전율을 느낄 만큼 압도적인 기량을 보면서 그동안 게으르지는 않았구나 싶어서 안심이 되었고, 그렇게까지 성숙해진 모습을 볼 수 있어 자랑스러웠다.


우리가 돌아오고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극장에서 갑작스럽게 지방정부 인사들의 모임에 노래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하더라고 했다. 꽤 중요한 자리였는데 갑작스럽게 요청한 것으로 보아 예정에 없었던 것 같았다. 아들은 오페라 공연이 화제에 올라 다른 가수들과 함께 가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과 반주자만 불렀다는 것이었다. 하긴 역할에 비해 적지 않은 출연료도 그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는 했을 것이다.


크리스티안산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작은 도시였지만 얼마나 정갈하고 깔끔했는지 그곳 사진을 지금도 모니터 바탕화면으로 띄워놓았을 정도이다. 그곳에서 아이들까지 한 달 가까이 지낼 수 있어서, 게다가 우리까지 가볼 수 있어서 우리 가족에게는 또 다른 의미 있는 도시가 되었다.


아이들이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베르겐을 좀 다녀오라고 했는데 직항이 하루에 한 편 뿐이고 다른 항공편은 오슬로 환승이어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침 아들과 함께 출연한 소프라노가 베르겐 오페라 극장장의 부인이었는데 왜 베르겐 오페라극장에는 오지 않느냐고 하더란다. 그 극장이 우리가 베르겐에서 머문 호텔 바로 앞에 있는 그리그 극장이었고, 그 소프라노가 출연하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공연 포스터가 극장 건물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혹시 그곳에서 공연할 기회가 되면 아이들도 꼭 함께 가라고 했다. 여행객에게는 북유럽에서 첫 번째로 손꼽을만한 곳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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