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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29.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62)

삼십 년쯤 전에 노르웨이 베르겐에 갈 기회가 있었다. 오슬로에 출장 갔다가 주말을 이용해서 다녀온 것이다. 그때 그곳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언젠가 아내와 꼭 함께 다시 찾으리라 마음먹었다. 은혼식 여행을 유럽으로 가기로 생각하면서 당연히 베르겐을 첫 번째로 꼽았다. 파격적으로 보름이나 휴가를 얻기는 했지만 너무 북쪽에 떨어져있다 보니 거기를 넣어서는 일정을 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곳은 영 못 가보려나 했다.


아들이 노르웨이 크리스티안산에 있는 킬든 극장에서 공연이 있다고 해서 다시 욕심을 냈다. 크리스티안산은 노르웨이 남쪽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인데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얼마나 정갈한지 그 모습만으로도 기억에 오래 남을만했다. 극장에서 마련해준 아들 숙소에 짐을 놔두고 가벼운 배낭만 하나씩 메고 아내와 베르겐으로 향했다.


베르겐이 워낙 작은 도시여서 지도 없이도 잘 찾아다닐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길었던지 둘째 날이 되어서야 겨우 동서남북이 구분이 되었다. 노르웨이는 여름이 기가 막히다. 갈 때가 시월이었으니 여름만은 못해도 관광하는 데야 별 일이 있겠나 했지만 도착한 날과 다음 날 내내 날씨가 좋지 않았다.


먼저 그곳을 찾았을 때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구시가지의 한자동맹 때 지은 목조건물도 그냥 그랬다. 그때 아내 선물로 바이킹 전통문양이 들어있는 은 세공 목걸이를 샀던 가게가 그대로 있어서 다시 들어갔는데 영 그때 분위기 같지가 않았다. 아내도 말은 안 했지만 그렇게 아름답다던 곳이 뭐 이런가 하는 표정이었다. 피오르드 절경을 보는데도 별로 감동이 없었다.


전에 베르겐에 다녀갈 때 그리그의 오두막을 가보지 못한 게 무척 아쉬웠다. 그가 말년을 보내며 작곡에 몰두했던 오두막 딸린 집이 그리그 박물관이 되어 있었는데. 둘째 날까지 비도 간간이 오고 아내도 별로 감흥이 없는 것 같아 셋째 날 플뢰엔산이나 올라갔다가 크리스티안산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셋째 날 일어나니 날씨가 활짝 개었다. 전날과는 분위기가 영 딴 판이었다. 계획했던 대로 등산전차를 타고 플뢰엔산에 올라갔다가 걸어서 내려왔다. 비행기는 밤 열 시나 되어서 있어서 내친 김에 그리그 오두막을 가보기로 했다. 베르겐 시내와 공항 중간쯤 되는 곳이었는데, 거기도 경로 할인이 있었다. 트램 발권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젊은이들에게 부탁을 했더니 반값만 내면 된다는 거 아닌가. 관광안내소에서는 삼십 분 정도 걸으면 된다더니만 그보다 훨씬 더 걸려서 중간에 다시 돌아올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도착해보니 중간에 돌아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그리그가 내려다보던 바다며, 그가 작곡에 몰두했던 오두막이여 주변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해가 조금씩 기울어지며 바닷물에 반사되는 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 했다. 그러고 보니 이틀 밤 묵었던 호텔 앞에 있던 콘서트홀 이름이 ‘그리그 홀’이었다. 홀 앞에 그리그 등신대 동상이 서있었는데, 유난하다 싶을 정도로 작았다. 아시겠지만 등신대는 실제 크기대로 만든...


<30년 전에 아내 목걸이를 산 가게>
<그리그 홀 앞에서 그리고 성님과>
<그리그가 작곡에 전념했던 오두막 내부>
,그리그의 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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