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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an 05. 2024

걸프의 순간

<피렌체의 식탁> 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1

압둘칼리끄 압둘라

김강석ㆍ안소현 옮김

술딴스북

2023년 10월 23일     


2030년 엑스포는 사우디 리야드에게 돌아갔다. 엑스포 중에 가장 권위 있는 ‘등록’ 엑스포가 불과 2년 전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렸는데 2025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고 다시 걸프국가인 사우디로 돌아간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2022년 월드컵이 카타르에서 열렸는데 2034년 월드컵도 사우디 차지가 되었다.     


저자는 불과 60년 전의 걸프국가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불모의 황량한 사막에서 천막생활을 하며, 자신의 발아래 세계최대의 유전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라 가난 속에서 간신히 살아가는 유목민이었으며, 석유가 터진 이후에도 오히려 서방세계가 훨씬 큰 이익을 누렸다고 평가할 만큼 그들의 리더십이 형편없었다”고 묘사한다. 그러던 나라들이 21세기에 들어서 20년 사이에 오랜 세월 아랍세계를 지배하던 이집트ㆍ시리아ㆍ이라크를 제치고 아랍의 패권을 차지한 것이다.     


우리는 걸프국가를 그저 석유 하나로 일어선 졸부국가 쯤으로 여긴다. 석유 하나로 일어선 국가인 것은 맞는데 놀랍게도 그들의 역량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그 영향력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고 있다. 저자는 걸프국가가 지금과 같은 자리에 있게 만든 <걸프의 순간>을 다섯 시점으로 잡고 있다. 하지만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네 시점으로 구분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해 보인다.     


“첫째, 영국의 지배를 받던 부족국가들이 영국이 철수하면서 아랍에미리트ㆍ카타르ㆍ바레인으로 독립한 1971년. 둘째, 오일쇼크로 인한 유가 급등으로 재정수입이 증가하면서 국제사회가 걸프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한 1973년. 당시 오일머니로 인해 걸프 사회는 사치에 물들었고 국민은 자력이 아닌 국가에 의존하게 되었다. 셋째, 이란의 샤 정권 붕괴로 이슬람공화정이 수립되고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나면서 오일머니로 일군 걸프국가의 성과와 안정을 무너뜨린 1979년. 걸프국가들은 과도한 국방예산을 지출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성장이 멈췄다. 당시만 해도 약소국이었던 걸프국가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걸프협력체(GCC)로 하나가 되었다. 넷째, 아랍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아랍의 봄’이 일어난 2011년. 이때부터 걸프국가들은 아랍 문제에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걸프국가들이 부상하기 전의 아랍세계는 유구한 문명, 뛰어난 지도자, 세계 수준의 대학, 영향력 있는 언론, 거기에 정치결사체인 아랍연맹까지 소프트파워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던 이집트가 주도했다. 그 후에 이란이 혁명적인 소프트파워로 떠올랐으나 곧 확장주의 세력으로 변모해 오히려 지역의 안보와 안정을 위협했다. 이어서 터키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갈망하는 역내 대중들에게 민주주의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지만 그 모델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러는 사이 걸프국가들은 내실을 다져가기 시작했다. 2018년 OECD 자료에 의하면 사우디의 18세 청년 진학률이 98%이다. 국민의 98%가 최소한 고등학교는 마쳤다는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아랍국가 15세 이상 국민의 문해율은 카타르 93%(2017), 쿠웨이트 96%(2020), 바레인 92%(2011), 아랍에미리트 96%(2019)이다. 2023년 기준으로 보면 문맹률은 이미 5% 아래로 떨어졌다.     


걸프국가의 파워를 가장 손쉽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항공사다. 미주를 제외한 항공노선 중에서는 1984년 출범한 에미리트항공이 압도적이었다. 놀랍게도 2023년 스카이트랙스에서 발표한 항공사 순위에서 1994년 출범한 카타르항공이 2위에 올라 4위에 그친 에미리트항공을 앞질렀다. 여기에 2004년 출범한 아랍에미리트의 에티하드항공까지 가세했다.     


이에는 젊은 지도자들의 역할도 컸다. 1995년 43세로 즉위한 카타르의 하마드 국왕은 통치하는 동안 카타르를 떠오르는 스타로 만들고 2013년 33세인 아들 타밈 빈 하마드에게 왕위를 이양했다. 아랍에미리트는 2004년 44세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를 아부다비 통치자로, 56세의 무함마드 빈 라시드를 두바이 통치자로 세웠다. 사우디는 2017년 32세의 무함마드 빈 살만이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걸프국가는 이들 세 명의 무함마드가 이끌어가는 ‘무함마드의 순간’을 맞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이다. 무함마드 빈 라시드는 두바이를 금융과 비즈니스의 중심으로 만들었고, 무함마드 빈 자이드는 아랍에미리트의 군사력과 물류능력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무함마드 빈 살만은 거대사업을 앞세운 개혁정책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왕정국가인 걸프국가에서 세계적인 언론사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카타르의 <알자지라> 방송은 아랍 시청자들의 정치적 사고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9.11 테러 보도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해 이후 서방 언론의 압도적인 지배력을 무너뜨리고 CNN의 영향력을 줄여나갔다. 이런 <알자지라>의 성공은 연 50억 달러에 달하는 카타르 정부의 지속적인 재정 지원 때문에 가능했다. <알자지라>는 아랍 언론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언론의 자유를 누린다. 카타르 국왕은 누구도 <알자지라>의 편집방향이나 토론 프로그램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알자지라>에 대한 개입을 카타르와 자신에 대한 주권 침해로 여긴다.     


여기까지만 보면 걸프국가들은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걸프국가들은 ‘왕정국가’와 ‘인구구조’라는 치명적인 두 가지 결함을 안고 있다.     


저자는 걸프의 리더십은 비전 없이는 완성될 수 없으며 그 비전은 민주주의 영역에서 신뢰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걸프의 현대화는 가능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적 개혁이 전제되지 않으면 현대화를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2023년 언론의 자유 보고서에 따른 순위는 아랍에미리트 145위, 쿠웨이트 154위, 오만 155위, 사우디 170위, 바레인 171위이고 언론의 자유를 누린다는 <알자지라>를 보유한 카타르도 105위에 지나지 않는다. 매년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민주주의 체제 리스트에는 어떤 걸프국가도 올라오지 않았다.     


걸프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결정적인 위협은 인구구조의 불균형이다. 2020년 기준으로 외국인 비율은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가 90%, 쿠웨이트가 69%, 바레인이 53%, 오만과 사우디가 39%이다. 저자는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는 자국민이 2027년 5%, 2035년에는 1%까지 떨어지고 그 이후에는 거의 0%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면서 자국민 없이 안정적인 발전모델이 작동할 것인지 묻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묵직한 질문을 던져놓고도 정작 결론에서는 걸프국가와 국민들이 지금까지 새롭고 위급한 도전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이를 극복했다고 언급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자원으로 앞으로도 잘 해나갈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으로 끝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대학 정치학 교수인 저자는 아랍에미리트 국민으로서 자신의 희망과 기대를 말하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행간에서 그의 불안이 느껴진다. 걸프국가들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이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걸프국가들은 하나같이 왕정 체제를 바꿀 의도가 없다. 그러니 걸프국가들이 현대화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결국 완성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인구구조의 불균형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우디는 왕세자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에도 지난 수 년 동안 인구구조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안정적인 발전모델이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내가 지나치게 행간을 부정적으로 읽은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내가 오독한 것이기를 바란다.  


https://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0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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