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잉여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Jan 30. 2024

2024.01.23 (화)

이스탄불 여행기

사우디에서 마지막 몇 년은 소송으로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한 채로 보냈다. 세계 건설업계에서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회사가 이끌었던 사업관리단조차 사업의 취지를 가장 잘 구현했다고 평가한 사업을 사우디 정부가 부실시공이라는 딱지를 붙여 공사비 절반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견디다 못해 잠시 서울에서 심신을 추스르고 돌아갈 생각으로 왔다가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아 결국은 귀국한 모양이 되었다.


1심 승소 판결이 나오기까지 몇 년이 걸렸는지 모른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변호사의 예상을 비웃듯 2심도 기약 없이 늘어졌다.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은 법원에서도 소송을 제기한 쪽에서 제풀에 지쳐 그만둘 때까지 질질 끈다더라 마는, 설마 그러기야 할까 했다. 2심 시작되고 근 1년을 버티다 돌아왔는데 돌아오고 2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사우디 파트너는 이젠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 몇 년 받지 못한 급여도 포기하기엔 너무 크지만, 그보다는 수십 년 직장생활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회한이 더 컸다.


아내는 서울에 돌아오고 나서 내가 생기가 돌더라고 했다. 포기하면서 비로소 늪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그러면서 그곳의 일은 온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 그곳에서 경험한 것을 이야기할 기회가 하나둘 생기고 이젠 그것이 본업이 되다시피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내가 사우디 시장에 매우 부정적이라고 지적한다. 그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어쩌면 내 개인적인 경험이 덧입혀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늘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내가 말하고 쓴 것을 수없이 들여다보지만 내가 돌아보는 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기는 해도 내 가까이에 그것을 물어볼 만한 사람도 마땅히 없다.


가까이에 없어서 그렇지, 그럴만한 이가 아주 없기야 하겠는가. 하지만 그런 시간을 내달라기엔 너무 바쁜 이여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연구년으로 잠시 서울을 떠나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 가면 시간을 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것저것 재지 않고 시간을 내달라고 청을 넣었다. 감사하게도 허락은 얻었는데, 생각해 보니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럴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는데.


뭐 어쩌랴. 기왕 신세 지는 거 확실하게 배워가는 거지. 


보스포루스 해협 위로 해가 솟았다. 첫째 날 시작.



매거진의 이전글 2024.01.12 (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