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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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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an 15. 2024

2024.01.12 (금)

민수기. 이스라엘 백성이 세렛 시내를 건너는 기사를 읽었다. 오래전 아라바 광야를 바라보고 세렛 시내를 건너면서 가졌던,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던 특별한 감동과 깨달음이 다시 떠올랐다.


호렙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 거기서 세렛 시내를 건너 요단강가에 있는 모압 평지까지가 지척인데, 그 세렛 시내를 건너는 데만 꼬박 삼십팔 년이 걸렸다. 말씀에 순종하였으면 사나흘 길에 불과한 그 거리를 삼십팔 년을 헤매야 했다는 말이다.


현지에서 성서지리를 공부하던 선교사께서 알려준 세렛 시내는 삼십팔 년을 더 기다려야 하기엔 너무도 보잘것없는 흙 골짜기에 지나지 않았다. 나무도 풀도 없고 심지어 물도 흐르지 않는 세렛 시내는 폭이라고 해봐야 그저 삼사백 발짝이나 되었을까.


그 오랜 세월을 헤매고서야 건널 수 있었던 세렛 시내는 보잘것없어서 오히려 감동적이었다. 그곳이 거대한 협곡이었다면 광야에서 헤맨 삼십팔 년이 설득력이 있었을 테지만, 삼십팔 년이 불순종의 대가였고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이었는지 깨닫지는 못했을 것이다.


출애굽기가 역사적 사실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세렛 시내를 보면서 깨달았던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되뇌는 것이 논리적으로 모순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해도 그 감동을 굳이 지워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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