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이스라엘 백성이 세렛 시내를 건너는 기사를 읽었다. 오래전 아라바 광야를 바라보고 세렛 시내를 건너면서 가졌던,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던 특별한 감동과 깨달음이 다시 떠올랐다.
호렙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 거기서 세렛 시내를 건너 요단강가에 있는 모압 평지까지가 지척인데, 그 세렛 시내를 건너는 데만 꼬박 삼십팔 년이 걸렸다. 말씀에 순종하였으면 사나흘 길에 불과한 그 거리를 삼십팔 년을 헤매야 했다는 말이다.
현지에서 성서지리를 공부하던 선교사께서 알려준 세렛 시내는 삼십팔 년을 더 기다려야 하기엔 너무도 보잘것없는 흙 골짜기에 지나지 않았다. 나무도 풀도 없고 심지어 물도 흐르지 않는 세렛 시내는 폭이라고 해봐야 그저 삼사백 발짝이나 되었을까.
그 오랜 세월을 헤매고서야 건널 수 있었던 세렛 시내는 보잘것없어서 오히려 감동적이었다. 그곳이 거대한 협곡이었다면 광야에서 헤맨 삼십팔 년이 설득력이 있었을 테지만, 삼십팔 년이 불순종의 대가였고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이었는지 깨닫지는 못했을 것이다.
출애굽기가 역사적 사실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세렛 시내를 보면서 깨달았던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되뇌는 것이 논리적으로 모순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해도 그 감동을 굳이 지워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